증후군 드림 합작 : https://dreamingtogether.wixsite.com/syndrome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 가면 증후군이라고도 불리며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화가 나거나 슬플 때도 무조건 웃는 증상을 말한다.

 

 

 

 

평범하게 굴러가던 내 일상생활들이 조금씩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유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해진다던가, 우울해진 상황에서 속으로는 눈물을 펑펑 쏟고 있지만 거울을 보면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등 조금씩 나에 대한 문제점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냥 학생 때 앓았던 우울증이 다시 나타난 걸지도 몰라, 요즘 상황이 많이 힘들었잖아? 라며 나 자신을 스스로 다독이며 현 상황을 모면하기에 급급했다. 언제 한번은 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봐야겠어- 라는 생각으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지금의 상황까지 다다른 걸지도 모르겠다.

 

우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돼. 늘 항상 웃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그를- 스티브를 걱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안 된다는 강박과 다름없는 것들에 사로잡혀 있던 걸지도 모르겠다. 걱정하는 말에 "괜찮아요."라며 미소를 지어보이기 일쑤였고,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스티브 몸부터 챙겨요." 라며 그를 돌려보내곤 했다. 괜찮아. 평소처럼 잘 하고 있어 현화야, 계속 이렇게만 지내면 돼. 라며, 점차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었지만 나 스스로가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현화. 밖에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좋아하는 빵 사왔는데-"

"죄송해요. 지금은 입맛이 없어서요. 나중에 먹을게요."

"그래? 알겠네. 그럼-"

"따로 빼두면 제가 나중에 먹을게요. 먼저 들어가 볼게요."

 

평소에 그렇게나 좋아하던 음식도 이상하게도 끌리지 않았다. 식욕이 없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입에 넣어 먹었는데 요즘 들어 전혀 입에 대지 않을 정도로 식욕이 감퇴되었다. 먹는 양이 줄어든 건가, 살이 빠질려는건가- 라며 단순한 생각들로 그렇게 단순한 상황들을 조금씩, 조금씩 넘기고 있었다. 왜 먹지 않냐고 질문을 하면 다이어트중이라며 둘러대는 것처럼.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어깨가 뻐근해…?"

 

과해보이는 운동 후에도 찾아오지 않던 근육통도 유난히 심하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다리의 움직임은 평소에도 많아 잘 느끼지 못했지만 유난히 팔의 사용이 많았던 오늘, 극심한 근육통이 시달리다 못해 베개를 끌어안고 혼자 앓는 괴로운 신음을 내뱉고 만다. 약과 찜질등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한 후 얼추 가라앉자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도 얼마 가지 못했고 점차 온몸의 신경통은 몸을 찢어 버릴 듯한 통증으로 찾아왔다. 운동을 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였고 통증이 다음날까지 이어지는 경우에는 하루 종일 누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이상 증새를 알고 있었지만 미루던 그 순간을 후회한다. 누군가 몸에서 이상한 기분을 느끼거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는 거라 했는데 난 여태껏 그 신호를 무감각한 내 생각으로 무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병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보기로 결심하게 만든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항상 이해해야해, 그는 바쁜 사람이잖아- 라며 나는 괜찮아, 항상 그랬잖아? 라며 외로움 속에 익숙해져가던 그날 이였다. 오랜만에 잡힌 데이트 약속덕분에 옷장 깊숙이 넣어두었던 어여쁜 원피스들을 꺼내 전신거울 앞에서 열심히 코디를 하고 있던 그런 날이었다.

 

"네? 오늘도 안 될 거 같다고요? 오랜만에 잡은 약속이잖아요."

"갑자기 출동명령이 떨어졌네. 행방이 묘연하던 녀석의 위치를 드디어 알아냈거든."

"그래도 갑작스럽게 말하면- 다른 사람들도 많잖아요. 영화도 1시간 후에 시작한단 말이에요."

"정말 미안 하네 현화. 1시간 안에 끝내보도록 해볼게. 약속시간 그대로 영화관 앞에서 만나는 걸로."

 

휴대전화 너머로 스티브를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연신 미안해하는 스티브의 말을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깊은 한숨이 나온다. 그래도 일단은 말을 믿어봐야지- 라는 작은 믿음으로 힘껏 데이트 복장으로 힘을 주고 영화관으로 찾아갔지만 영화가 시작하고 난 뒤에도 스티브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항상 그랬어. 왜 나만 이래야 해?"

 

집으로 돌아가던 길,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결국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주변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냈지만 울고 있는 그 상황 속에서도 계속해 올라가는 입 꼬리를 주체할 수 없었다. "어라 왜이래…?" 떨려오는 손으로 얼굴을 이리저리 만져보고, 손거울로 아무리 확인을 해보아도 울고 있는 표정과 어울리지 않는 미소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미루고 미루던 병월을 뒤늦게 찾아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의사 선생님 앞에 앉아 그동안 나타난 증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흐음- 무언가 심각해 보이는 표정으로 종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깊은 침묵 끝에 의사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과거에 우울증을 앓으셨다고요?"

"네. 그래서 저번과 같은 증세인줄 알고 과거에 하던 방법대로 그냥 지내면서 참았어요."

"참았다고요? 병원을 가지 않고요? 환자분 지금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계세요?"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 혹은 가면성 우울증. 같아 보이는 우울증이여도 많이 달랐다. 증상이 비슷했지만 나에게 나타난 우울증의 경우에는 계속해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울함을 드러내는 상태였던 것이다. 백짓장이 되어버린 상태로 약국을 나왔다. 손에는 처방받은 약이 들려있었고 머릿속에선 최대한 우울함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라는 조언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주변인들의 도움도 받으라고 했었지만

 

"받을 수가 있어야지. 바빠서 만나기도 어려운데."

 

가방 안에 대충 약을 넣어두고 집으로 돌아갈려던 순간 가방 깊은 곳에서 진동이 느껴져 근원지를 찾아 손을 뻗어 더듬더듬 찾아 꺼낸 휴대전화의 상태 바에는 메시지 아이콘이 하나 떠있었다. '현화, 만날 수 있나?' 예상한데로 그의 문자였다. 답장을 해도 다시 문자가 오는 데에 시간이 걸릴 거 같아 냉큼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수신음이 가더니 "현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날 수 있어요? 저 마침 밖에 나와 있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약속시간과 장소는 속전속결로 잡혔고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해 기다리다보니 헐레벌떡 뛰어온 그가 내 앞에 앉았다. 어떤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지? 데이트 약속을 갑작스럽게 취소했던 거, 아니면 오늘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 생각만 해도 가슴이 턱-하고 막혀온다. 해결방법을 나 혼자서 열심히 찾고 있을 때 아메리카노를 깔끔히 다 마신 스티브가 먼저 입을 열었다.

 

"현화. 그땐 정말 미안했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는데 내가 지휘하던 일이여서 빠져나갈 수 없었네."

"지금 그 말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였어요?"

"그래. 오랜만에 만나기로 약속 잡은 거였는데 갑작스럽게 취소해버리고 어제 연락도 안 되고 해서 무슨 일 생겼나 해서-"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손가락과 어찌할 줄 모르는 시선, "어제는 내가 잘못한 게 맞으니 모든 각오를 하고 왔네." 라며 비장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스티브를 보니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지어진다. 이번에는 우울함을 감추기 위해 지어보이는 미소가 아닌 그런 표정이었다. 그래, 이런 사람 앞에서 감춰봤자 서로만 힘들어질 거야.

 

"실은 어제 상태가 안 좋아서 저도 바로 돌아갔어요. 그리고 병원에 가봤는데 아마 다시 '그것'이 나타난 걸 수도 있데요."

"정말… 정말 미안 하네…"

"아니에요. 괜찮아요. 대화하니까 조금씩 풀리는걸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온다. 어딘가 꽉 막혀 있던 것들이 뚫린 것처럼 풀려나간다. 여전히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스티브의 손을 살짝 잡고 "제가 말했죠? 저는 괜찮다고요." 걱정하지 말라는 미소를 지어보이자 이제야 조금씩 표정이 풀려나가는 스티브였다.

 

아직은, 아직은-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미소가 조금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마법소녀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꿈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결혼식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내 이름을 불러줘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트레이너와 챔피언  (0) 2020.03.31

드림 마법소녀 합작 / 창작 세계관

https://rdeepest00.wixsite.com/magicalau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수가 모습을 드러낸지도 아연 두 달이 지났다. 우주에서 날아온 것들인가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고 일반적인 공격으로는 도저히 해치울 수 없는 그런 괴수-변종이었다. 그러다가 혜성처럼 나타났다고 해야 하는 존재일까 신문이건 뉴스건 대서특필되는 괴수를 물리치는 '마법소녀'의 등장이었다. 군대나 어벤져스의 도움으로 괴수의 움직임을 저지하면 마법소녀는 바로 공격을 하면 되는 그런 방식이었다.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 신비한 능력을 휘두르는 마법소녀의 정체를 모두 궁금해 하고 있었고, 모두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난 그 마법소녀의 정체를 알고 있다- 라기 보단 알 수밖에 없었다.

 

"아니 괴수든 변종이든 나타나기 몇 분 전에 알려주는 시스템은 없어요? 변명거리 만드는 것도 힘들어요."

 

둥그스름한 모양의 빛을 내는 물체는 미안한지 꾸벅- 인사를 해 보이고는 어서 빨리 가자며 등을 떠밀기 시작했다. 알겠어요. 알겠다고요. 팔목에 하고 있던 팔찌를 뺀 뒤 주먹을 꽉 쥐자 입고 있던 남색의 원피스는 어느새 중갑옷 형태가 되어있었고 양 갈래로 묶고 있던 머리는 어느새 높은 포니테일의 형태로 묶여있었다. 그리고 팔찌를 쥐고 있던 손에는 내 키만 한 지팡이가 들려있었다. 누군가에게 들키기 전에 재빠르게 빠져나가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안간힘을 쓰고 있는 어벤져스 구성원들이 있었고 그 와중에 그-스티브와 눈이 마주쳤다. 마주치자마자 재빠르게 시선을 피하고 일격을 날리자마자 먼지처럼 변종은 흩날리듯 사라졌다.

 

"오늘도 나타난 마법소녀가-"

 

밑에서는 인터뷰를 하는 기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상황을 어떻게든 정리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봤을까? 봤었다 하더라도 나를 알아봤을까- 불안한 마음을 안고 현장을 재빠르게 탈출했다.

나는 여전히 왜 내가 이런 역할을 맡아야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한 변종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평범하진 않더라도 일상적인 삶을 살고 있던 거 같은데 '그것'들이 나타난 뒤로, 나타나는 횟수가 늘어 가면 늘어갈수록 나는 점차 망가져 가기 시작했고 내 삶의 톱니바퀴들도 점차 하나씩 하나씩 틀어지기 시작했다.

 

"버블버블!!"

 

기술을 이름을 외치고, 괴수를 가두고, 공격하다가 실패하면 역으로 당하기 일쑤였고 마법소녀의 상태에서 다친 흉터들은 변신이 풀리고 난 뒤에도 남아있었다. 흉터가 깊은 날은 붕대를 검거나 감추기 위해 급급했다.

 

"현화 요즘 많이 다치는 거 같은데."

"괜찮아요. 제가 하는 일이 좀 많이 다치는 일이잖아요."

"그래도-"

"스티브. 저는 정말로 괜찮아요."

 

상처를 우연히 들키게 된다면 스티브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고 난 항상 괜찮아요. 걱정하지 말아요. 라며 안심시키기 급급했다. 정말로 과연 나는 괜찮은 걸까? 괜찮았던 것일까? 그런 의문을 가지곤 했다.

 

처음에 분명 마법소녀일 때 나의 일은 그것들을 없애는 일이었고, 경찰이건 군인이건 어벤져스건 그들이 하는 일은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부상자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마법소녀의 탓으로 돌아가기 급급했고 그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나는 점차 피폐해져 갔다. 어쩌다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왜 내가 마법소녀여만 하는데요? 이유가 있으니까 나를 마법소녀로 결정한 거 아니에요."

 

옆에서 마법소녀일 때만 도움을 주는 둥그스름한 물체를 쥐고 흔들면서 소리도 쳐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빛도 없었다. 그것들이 나타날 때만 빛을 내고, 내 대답에만 응해주지만, 지금은 그것들이 없어서 그런 걸 까- 빛은 없었다. 벽에다 그것을 집어 던지며 화풀이를 하고 소리를 질렀지만 속 안에 응어리진 것은 전혀 풀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법소녀의 운명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휘황찬란하지 않다. 분명 휘황찬란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어둠만이 가라앉아있었다. 지금은 어둠만이 보이고 있다.

 

"요즘 변종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마법소녀'라고 부르던데. 현화도 알고 있었나?"

"네 물론 알고 있었죠. 유명하잖아요. 괴수를 물리치는 마법소녀잖아요."

 

떨리는 손과 목소리를 감추기 위해 애를 썼다. 우려하던 일이 드디어 코앞으로 다가왔다. 최대한 들키지 않기 위해 눈을 피했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척 하기 위해 손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을 할까. 든든하다는 칭찬을 할까 아니면 비난 섞인 말을 할까. 두려움 반 기대 반 떨리는 마음으로 스티브의 말을 기다렸다.

 

"이런 쪽의 일은 상당히 어렵고, 힘들고, 괴로울 텐데 내색하지 않고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라는 말을 항상 해주고 싶었네."

 

툭- 하고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이 힘없이 쟁반 위로 떨어졌다. 그는, 스티브는 알아주고 있었다. "얼굴이 밝혀지면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을 정도야."라는 말을 덧붙인 걸 보면 아마 그때 얼굴을 보지 못했던 거 같아 안심이 들었고, 작은 응원의 한마디가 끈을 놓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열심히 노력했다. 나는 노력했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아니었나 보다. 화려해진 기술, 최대한 인명피해가 나지 않도록, 최대한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보았지만, 주변의 시선은 그렇지 않았던걸 지도 모르겠다.

 

'마법소녀 뭐하냐.'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화려해진 기술, 늘어가는 괴수들, 늘어나는 인명피해' '차라리 내가 마법소녀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가시 돋힌 말들이 내 마음 한구석에 깊게 박혀온다. 계속해서 이 길을 해나가도 괜찮은 걸까. 무늬만 수훈선수인 이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 걸까. 눈물이 계속해서 차오른다. 괜찮다고 스티브가 해주었던 말들을 되새기고 되새겼지만 역시나 나는 어쩔 수 없는 나약한 마법소녀인걸지도 모르겠다.

 

 

"마법소녀가 사라진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괴수들은 계속해서 도시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어벤져스도 여기까지 인걸 까요?"

 

저거 쫓아내면 안돼? 신경질적인 토니의 말과 행동으로 옮기려는 몸짓에 말리기 급급했다. 정의를 위하던, 도시를 지키기 위해 발 벗고 나선, 힘들어도 내색 하나 하지 않던 노력하던 그녀는 어디에도 없었다. 연락도 닿지 않는 그녀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여러분 저기... 마법소녀가 나타-"

 

앵커의 말은 더는 들리지 않았고 커다란 폭음만이 들려왔다. 뿌연 먼지들이 시야를 가렸고 미사일을 쏴대는 듯한 밝은 빛들은 주위의 건물들을 하나씩, 하나씩 없애나가기 시작했다. 공격을 하는 곳으로 의심되는 지점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렇게나 기다리던, 그리워하던던 마법소녀-그녀가 서 있었다. 하지만 평소 입고 있던 남색의 중갑옷이 아닌 검은색 망토를 휘날리는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항상 밝은 빛으로 가득하여 보이던 그녀의 눈동자가, 정의감으로 넘쳐나던 그녀의 눈동자 안에는 더는 정의감도, 밝은 빛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더는 우리가 그리워하던, 내가 알고 있던 마법소녀가 남아있지 않았다.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증후군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꿈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결혼식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내 이름을 불러줘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트레이너와 챔피언  (0) 2020.03.31

드림 제복 합작  : http://rockstar777.wixsite.com/dreamuniform

 

 

 

 

호화로워 보이는 파티장. 곳곳에 앉아 술병을 들고 마시고, 소리 지르고, 나가서 춤을 추는 사람들, 신 나며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모두 하나같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누군가가 비웃었던 파란색으로 물들어진 그런 전투복이 아닌 말끔하게 다려진 군복을 입고 이 파티장 안을 배회하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 처음 왔지만, 이상하게도 난 이곳을 알고 있다.

 

"춤출 준비가 됐나요?"

 

익숙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곳에는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그녀가 있었다. "카터."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무언가 익숙한 얼굴이 겹쳐 보이더니 머리가 지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는 몸을 간신히 주변 탁자를 잡으면서 중심을 되잡고 몸을 일으켰다. 옅은 미소를 지어 보이는 카터는 "전쟁은 끝났어요, 스티브. 이제 집에 갈 수 있어요." 라며 내 손을 꽉 잡아오기 시작했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집에 같이 돌아갈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란 걸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었지. 하지만 당신과 같이 돌아갈 집은 아니었어."

"그럼 누구와 돌아갈 집이었죠?"

 

그녀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의 이름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나 불렀고, 그리워했고, 좋아했던 그녀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옷깃을 잡아끌었고 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소란스러웠던 주변의 사람들이, 모든 사람이 사라졌다. 내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나와 같은 제복을 입고 있었다. 길게 늘어져 양 갈래로 묶은 머리, 나를 올려다보는 얼굴이었다. 난 이 얼굴을 알고 있다.

 

"당신은 내 이름을 알고 있어요."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가 머리 안을 맴돈다. 난 이 목소리도,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도 기억하고 있다. 알고 있는 몇 단어들이 입안에 잔여물처럼 남아있다. 천천히 잡고 있던 옷깃을 놓기 시작했고 이걸 놓쳐버리면 영영 잃어 버릴 것만 같아 다급히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내 손에 비해 작게만 느껴지는 손은 내 손안에 다 잡혔다. 그나저나 원래 이 옷이 이런 감촉이던가?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짙은 회색빛이 감도는 눈동자 색, 기억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현화."

 

작게, 그녀에게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멈칫- 하는듯하더니 이내 활짝 웃어 보이는 그녀는 "뭐야. 기억하고 있었네요."라며 나를 안아오기 시작했다. 왜인 걸까, 왜 이렇게 마음 한구석이 울적한 걸까. 호화로웠던 파티장은 온데간데없어졌고 그녀가 입고 있던 단정한 군복은 이내 하얀색의 반소매와 남색의 치마로 이루어진 원피스로 변하였다.

 

"이제 일어나요 스티브."

 

손에 잡혀있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고 이내 그녀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입고 있는 이 군복. 어쩌면 아직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터벅- 터벅- 얼마나 걸었을까 눈앞에는 반쯤 열려 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는 문이 보였다.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어떻게 변할지 아직 짐작할 수 없다. 꽉 잡은 손잡이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문을 열고 나가면서 입고 있던 이 옷도, 아까의 기억들도 하나둘씩 지워져 간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가 지끈 아파져 온다. 아까까지만 해도 입고 있었던 제복은 온데간데없었고 커다란 상처를 입었는지 붕대가 이곳저곳에 감겨있었다.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오른쪽 손에서 느껴지는 무게감에  고개를 돌리자 그녀가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계속 울었는지 이미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미처 떨어지지 못한 눈물이 고여 있었다. 그녀가 최대한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히 몸을 돌려 반대쪽 손으로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돌아갈 집은 여기 있었어. 다녀왔네…."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증후군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마법소녀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결혼식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내 이름을 불러줘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트레이너와 챔피언  (0) 2020.03.31

드림 웨딩합작 : http://aoima54.wixsite.com/weddingcollabo

 

 

 

 

두꺼운 사진첩을 넘기면서 보이는 사진들은 각기 다른 신랑 신부들이 서로에게 어울리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진들이 가득했다. 결혼식 복장을 고르라면서 건네받은 이 사진첩을 보는 둥 마는 둥하다가 무심하게 덮어버리고 건너편에 앉아 어찌할 줄 모르는 스티브를 포함한 어벤져스 멤버들은 노려보았다.

 

"그래서 지금 그 사람들을 잡기 위해 가짜 결혼식 극을 펼치자는 얘기에요?"

"응. 신랑이랑 신부가 그나마 우리 둘이랑 비슷하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결혼식을 가짜 결혼식으로 하자고요?"

 

처음에는 웨딩드레스 같이 구경하러 가자는 말에 혹해 같이 간 곳은 옷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닌 어벤져스타워였다. 아- 여기 왔었을 때 이상하다는 걸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일단 자리에 앉았지만 "진짜로 말하려고?" "그러다가 스티브 당신만 큰일 나."라는 말을 어렴풋이 들었을 때 바로 거절했어야 했다고 지금 이 상황에서도 몇 번이고 되새긴다. 신랑, 신부가 상당히 재력과 권력이 있는 자들의 아들과 딸이라고 결혼식 날 위협이 있을 거 같다며 우리 쪽과 이야기가 오갔다는데 정작 그 신부역을 맡은 나는 지금에서야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미안하니까 웨딩드레스는 제가 고르라는 거에요? 이왕 맡길 거면 웨딩드레스도 자기들이 고르고 넘겨주지."

"현화 그러니까 일단 진정하고."

"몰라요. 저는 안 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요. 이만 가볼게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던 순간 스티브의 손이 내 앞에서 멈췄다. '뭐에요.'라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천천히 손을 거둬가는 스티브였다. 나타샤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같이 대화-라고 하기에는 구경하러 온 사람들 같았지만-하러 왔던 토니에게 "둘이 이야기하게 비켜줘요." 라는 말과 함께 잘 해결해보라는 눈빛으로 한번 바라보더니 방을 나섰다. 서로 어찌할 줄 몰라 시선만이 오가자 일단 어떻게든 풀어보기 위해 자리에 다시 앉아 스티브도 천천히 다시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웨딩드레스- 행복한 결혼식은 몇번 꿈꿔보긴 했다. 서로 같이 결혼식장을 고르고,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서로 입어보며 어울리는걸 고르기 위해 상상하고, 예식장에서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입장하는 그런 모습을 몇번 그려보긴 했고 언젠간 이루어질 거라는걸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려질 거라는걸 전혀 몰랐지.

 

"나도 이 일을 부탁받았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어. 그래도 이런 식으로라도 한번 해보면 우리 둘이 진짜 결혼식을 위한 준비를 할 때 확실하게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그걸..."

"일단 현화와 상의 없이 수락한 건 미안해.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여전히 시선을 맞추지 않고 있었지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아직도 이 일을 나와 상의를 거치지 않고 수락했다는 점에서는 아직도 화가 나 있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의견의 요구와 선택을 해야만 했던 스티브의 처지에서 생각해본다면, 그 선택을 해야만 했던 사람이 나였다면 어쩌면 나도 같은 선택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래도 상대방과 의견을 먼저 맞췄을지도 모르겠다.

덮어두었던 사진첩을 다시 열어 천천히, 꼼꼼히 사진 하나하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현화?" 라는 스티브의 말에 한 번 시선을 맞추었다. "웨딩드레스 고르라면서요. 이왕 고르는 거 예쁜 걸로 골라야죠." 이 말에 표정이 펴지면서 입꼬리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식장이나 날짜는 그쪽에서 정해주는 거에요?"

"응. 일단 우리가 처리하지만, 그쪽에도 정보를 흘려야 하는 입장이니 그쪽에서 잡는다 하더군."

"흐음-"

 

사진에서 보이는 신랑과 신부의 미소는 다시 보아도 행복해 보였다. 다시 사진첩을 넘기는 속도가 점점 더 느려지고 점점 기분이 모호하게 변해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천천히 넘기는 손 위로 커다란 손이 겹쳐 올라왔다. 그 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았기에 스티브와 시선을 마주했다.

 

"진짜 우리 둘의 결혼식 때, 그때는 우리 둘이서 결정하자. 그 누구의 간섭도 없이."

"그거 직접 들으면 부끄러운 거 알죠?"

 

장난스럽게 건넨 말에 당황하자 "장난이었어요."라며 넌지시 웃으며 말을 건넸다. 이번 일은 임무 때문에 원치 않은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짜 결혼식을 하게 되었지만 가까울지 멀지 모르는 미래에 이루어질 결혼식을 다시 그려본다.

 


 

 

"캡틴 솔직히 그때 현화한테 맞지 않을까 걱정했죠."

"스티브가 그 일은 잘못하긴 했어."

"조용히 하게."

 

턱시도가 갑갑하게 느껴졌다. 잔잔하게 느껴오는 바람과 햇빛이 오늘 같은 날에 더더욱이나 잘 어울렸다. 옆에서 놀리는 듯이 말하는 베너와 토니에게 무슨 말을 내뱉으려 했지만, 준비를 마무리한다며 황급히 사라져버렸다. 현화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식장 안에서 확인하라며, 결혼식 전까진 신부의 얼굴을 확인하라며 신신당부했기에 대기실 안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주례를 맡은 토니의 말이 울려 퍼지고 식장 안으로 입장했다. 초대된 사람들의 축복과 환호 속에 당당하게 입장했다. 아직도 놀리는 재미에 빠져있는지 다음 순서를 말하는 것을 뜸을 들이는 토니를 한번 노려보자 그의 특유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럼 이제 기다리던 순서가 있겠습니다." 라는 말이 연이어 들려왔다. 누구의 에스코트를 받을까- 고민했었지만, 그녀의 옆에는 소중한 그녀의 친구가 옆에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면사포로 얼굴을 가린 그녀였지만 면사포 뒤로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활짝 미소가 퍼져있었다.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바라보니 더욱더 가슴을 뛰게 하였다.

 

"현화 정말 고마워."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마법소녀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꿈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내 이름을 불러줘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트레이너와 챔피언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무제  (0) 2020.03.31

드림 노래 합작 : http://merchandream.wixsite.com/songforyou

 

 

 

 

그에 대한 내 마음이 확신이 서면서 그만을 바라보았다. 그가 하는 일들을 알기 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내 생각들을 덧붙이면서 항상 그를 응원해왔다. 내가 그를 존중하고 응원하는 것처럼 그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 존중을 해주었고 응원을 해왔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었고, 나도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사람으로 서로 대우해주었지만 서로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그를 바라보는 시간이 무척이나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서로에게 주어진 일이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종종 예정에 없던 임무를 나간다든가, 단기간으로 알고 있었던 일이 장기간으로 변해 한동안 만나지 못하는 경우도 손가락으로 다 못 셀 정도로 무척이나 많았다. 금방 돌아온다고 해도 다시 다른 일이 생기는 경우가 일쑤였다. 내가 하는 일과 그가 하는 일이 달랐기에 이해를 하려 노력해보아도 이런 경우가 자주 반복되면서 이해하는 것도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스티브."

 

그를 간신히 만나면 나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의 입술에서, 목에서 내 이름이 나오기를 바랐지만, 항상 내 손만 따뜻하게 잡아주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결하기 위해 급하게 자리를 떠나는 그였다.

그는 특별한 사람이다.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면서도 모두에게 다른 의미로 '특별한 사람'이였다. 초반에는 계속해서 이해하려고 노력을 해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여러 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그 의문들은 기다리는 내 마음을 무척이나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다. 왜 나만 이렇게 그를 기다려야 하는 거지? 한 번쯤은 나를 바라보고, 내 이름을 불러주고, 따뜻하게 한 번쯤은 안아줄 수 있는 거잖아. 여러 생각이 점점 더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런 고민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그 사람만 바쁜 것이 아니라 이곳 모두가 바빴던 거였다. 아- 특이하게도 그에게 주어지는 일이 더욱더 많은 것 뿐이지만.

 

견디기 힘들어진 어느 날은 그에게 이별을 고하려고 했었다. 더는 기다리기 힘들다고, 아무리 이해하려 노력해도 나는 이런 기다림에 지쳐버렸다고 말을 하려고 했다. 이건 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라고 결심을 하려고 했었지만, 그의 목소리가, 그의 손길이 그런 마음을 무너뜨리기 일쑤였다. 역시 나는 그를 포기 할 수 없는 걸까?

 

"조심해서 다녀와요. 다치지 말고요."

"그래. 금방 다녀올게."

 

출발전 그를 간신히 만났다. 걱정 반 근심 반인 마음으로 그의 양손을 꽉 잡았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마에 짧은 키스를 남기고는 동료와 같이 이곳을 나섰다. 멀어져가는 그의 등을 바라보면서 나는 조용히 무사히 돌아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손을 흔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나지 못한지 며칠이 지났을까. 이제는 익숙해져야 하는 이 일들이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심리적으로 지쳐만 간다.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한 나뭇잎처럼 이 마음이 무척이나 위태롭다는 걸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그를 보고 싶다, 그를 만나고 싶다. 나만이 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도 지금이라도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이 조금씩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를 향하던 마음이 조금씩 지쳐가면 지쳐갈수록 깊은 어둠에 빠지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다른 거창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녔다. 그냥- 옆에서 나를 바라봐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했다. 깊고 깊은 어둠에 빠져가는 내 마음을 구원해줄 빛이 되어주었으면 했다. 과연 그는 이런 내 마음을 알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티브."

 

오늘도 여전히 내가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른다. 그도 내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했지만, 이것마저도 크나큰 욕심인 걸까?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여전히 내 손을 어루어 만져준다. 나를 위한다는 행동들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건 아녔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듣고 싶다.

 

"무슨 일이지?"

"아니에요. 먼저 가 볼게요."

 

'이름 한 번만 불러주세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내려갔다. 괜한 부탁을 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를 양옆으로 저어 보이고, 그의 손안에서 내 손을 뺀 뒤 아무 일도 아니라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잡아오는 그의 손에 나는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고 마치 마법처럼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현화, 많이 늦었지."

 

깊고 깊은 어둠에 빠져있던 마음에 한 줄기의 빛이 되어 나를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목소리가, 평소와 같이 잡고 있는 이 손이 무척이나 다르게 느껴졌다. 참고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내 이름을 그의 목소리로 불러주길 기다렸던 것 때문인 걸까 아니면 기다림에 지쳐있던 나를 구해줘서 그런 걸까- 울음의 이유를 알지는 못했다. 다만 드디어 그가 나를 바라봐 주었다는 것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는 점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품에 안겨 하염없이 울었다. 울면서 그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면 그는 가만히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나뭇잎이 떨어지기 전에, 더 깊은 어둠에 침식되기 전에 그가 다가왔다. 다시 나를 바라봐주었고, 다시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나의 손을 꽉 잡아주었다. 서로 엇갈려 다른 길로 향하고 있었던 것만 같았던 마음들이 다시 교차하여 만났다. 길고 길었던 여행 끝에 드디어-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꿈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결혼식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트레이너와 챔피언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무제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전투합작1  (0) 2020.03.31

게임 스포일러 주의

드림포케합작 : http://sumsome1.wix.com/dream-poke

 

 

 

 

풀들이 무성하게 자리 잡은 이곳. 평범한 길이 없었기에 조심해서 풀숲을 헤쳐나가면서 걸어갔다. 최대한 포켓몬을 만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느리게 해서 걸어갔지만, 앞에서 오던 무언가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포켓몬인가? 상황을 직면하기 싫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포켓몬의 울음소리가 아닌 "괜찮아요?"라고 물어오는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았던 두 눈을 떠 앞을 바라보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손을 내밀어 오는 금발의 트레이너가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닐세. 내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마을에 가는 길인가?"
"네. 저 앞에 있는 해안시티에 갈려고요."
"그럼 같이 가도록 하지. 그곳에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말이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서서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선을 피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게 무언가 이상한 거 같았지만 그래도 혼자 이 풀숲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이 해안도시로 향했다. 이름을 물어보니 '스티브'라고 알려주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내 이름이 많이 흔하다네."라는 말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그나저나 그쪽의 이름은-"
"현화라고 해요."


내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면서 뒤에 어떤 말을 한거 같지만, 너무 작은 소리였기에 듣지 못했다. 서로의 사이에 작은 대화가 몇 번 더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해안시티에 도착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갈 길을 갈려는 찰나 스티브가 내 손을 잡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황급히 손을 떼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오는 스티브였다.


"미안하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또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서로의 시간이 맞는다면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래. 체육관 우승에 대한 무운을 빌지."


짧은 인사를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리는 스티브였다. 저기- 라고 부르면서 붙잡으려 했지만 잡기도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향했기에 허공에서 방황하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사로잡혔다. 그나저나 내가 체육관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을 했던가-?


폭우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세게 부는 탓에 혼자서는 중심을 잡지 못해 주변에 있는 물건을 꽉 잡아야만 했다. 시선도 제대로 두기 힘든 이 날씨. 당장 어떻게든지 멈춰야만 한다. 한걸음, 한걸음 바람에 맞서 천천히 옮겼지만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질 뻔한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붙잡아 준 덕에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스티브?"
"괜찮나 현화."


나를 붙잡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스티브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있느냐는 질문을 하려던 찰나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외침에 질문할 틈이 없었다. 시선을 앞으로 옮겨 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가이오가를 멈춰야 해요."
"가이오가를 멈추려면 주홍 구슬이 필요해. 하지만 여기에 없다는 게 문제인데-"


주홍구슬?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누군가한테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 가방 안을 뒤져보자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는 구슬이 있었다. 가방 안에서 꺼내 들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어떻게 저게 저기에 있는 거지?"라는 여러 의문 섞인 말들이 계속해서 들려왔고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올려다보자 스티브가 내 손에 들린 주홍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화에게 이게 있을 줄 전혀 몰랐는데."
"어쩔 수 없어. 이게 남은 방법이야. 현화, 가이오가를 부탁할게."
"이 슈트를 입으면 가이오가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앞에서 외치던 사람들이 내 손에 슈트를 건네주면서 부탁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스티브가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괜찮아요."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당 안은 깊고 어두웠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진동이 커져만 갔다. 사당의 끝에 다다르자 커다란 동굴이 나왔고 물이 잠겨있는 곳에서 가이오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등에... 타라는 거야?"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마치 그렇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는 가이오가였다. 건네받은 슈트를 갈아입고 등에 올라타려는 순간 귀에서 지지 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일을 부탁해서 미안하네. 깊게 들어가면 더는 무전도 안될 거고. 그러니- 무사히 나왔으면 해, 현화."
"걱정 말아요. 스티브. 무사히 다녀올게요."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다시 한 번 괜찮다는 말을 하고 가이오가의 등에 올라탔고, 내가 올라타자마자 가이오가는 물속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물속에서 나와 슈트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형색색의 수정이 커다랗게 박혀 빛을 발하고 있었고 가이오가는 아까와는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켓몬이 볼 밖으로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원시회귀를 했고 동굴 안에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길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었지만, 무사히 나와 돌라는 스티브의 말이 떠올라 전력을 다해 가이오가와의 베틀에 임했고 이내 가이오가는 내 손에 아까와는 다른 모습으로 얌전하게 들어왔다.


"현화!"


밖으로 나오자 아까의 먹구름은 온데간데없고 맑은 하늘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공했어- 라며 서로 껴안으며 기뻐하고 있었고 막 밖으로 나온 나를 발견한 스티브는 나에게로 달려와 수고했다며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꽉- 껴안았다.


"그것 봐요. 제가 괜찮을 거라고 했죠?"
"걱정했어. 혹시 어떻게 되나 싶어서."


나를 내려놓고 어디 다친 곳이 없는지 둘러보고는 안심이 되었는지 내 손을 꽉 잡아오는 스티브였다. 두근- 아까와는 다른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아까 하지 못한 질문을 하려던 찰나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스티브와 나는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주변사람들의 말에 대답하면서 스티브를 찾았지만, 스티브는 전과 똑같이 어디론가 멀어져갔고 이번에도 나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스티브와의 만남이 머리 안에서 추억으로 잡아갈 무렵 모든 체육관에서 우승하고 포켓몬 리그에 드디어 도착했다. 수많은 트레이너와의 배틀, 체육관 관장들에게서 들은 여러 조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서 오세요, 현화 님. 포켓몬 회복을 도와드릴까요?"
"네. 부탁해요."


회복된 포켓몬을 받아들고 포켓몬 리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체육관 우승의 증거인 배지들을 보여주자 옆으로 비켰으면서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 건너편에는 어둡고 깜깜해 앞에 뭐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안된다는 생각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어두웠던 실내는 불빛이 들어왔다. 역시 최종목표인 곳 덥게 안에는 화려하고 각 관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뭐야. 새로운 트레이너?"
"현화라고 합니다. 그럼 승부를 부탁합니다."
"현화? 아- 그 녀석이 말한 아이가 너구나? 그럼 승부를 시작하자고."


처음 상대는 '토니 스타크'였다.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지만 의심은 뒤로한 체 베틀에만 열중했다. 길면서도 짧은 베틀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던 찰나 "우리 챔피언님이 꽤 오랫동안 기다리셨다고."라는 말을 하면서 다음 관문으로 나를 밀어 넣듯이 넘겨버렸고, 그곳의 문은 굳게 닫혔다. 순간 당황했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은 베틀에서 지거나, 이기거나 였기에 상처 입은 포켓몬을 치료하고 바로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남은 사천왕 들을 처치하고 드디어 챔피언의 방으로만 가는 길만이 남았다. 오는 내내 처음 토니 스타크에게 들은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아. 너가 걔구나?" 라던가 "왜 그렇게 찾았는지 알 거 같네."라는등의 말들을 들었다. 왜 그런 말을 하냐는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끝까지 가 봐. 그럼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제 마지막이야."


심호흡을 하고 빛이 새어나오는 챔피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은 무척이나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고 할머니에게 이야기로만 들었던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챔피언은 나이가 많은 옛날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때 만났던, 빠르게 사라져 잡지 못했던 그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스티브...?"
"맞아, 현화. 기다리고 있었어."
"당신이 챔피언이었군요."


대답대신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스티브의 뒤로 최종전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이 그의 포켓몬들이 나타났다. 괴물 볼을 꽉 쥔 손에 긴장이라도 한 듯 땀이 차기 시작한다. 눈을 감은 뒤 심호흡을 크게 내쉬어 보였다.


"그럼 마지막 베틀을 시작하죠. 스티브. 아니- 챔피언."
"나도 바라던 바야."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결혼식  (1) 2020.03.31
스티브 드림 : 내 이름을 불러줘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무제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전투합작1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특별한 관계  (1) 2020.03.31

빌런X영웅

 

 

 

감았던 눈을 뜨면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밝아진 시야로 주의를 한 번 둘러보고 심호흡을 깊게 내쉬어본다. 바쁘게 날 지나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반대방향을 향해 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어느새 굳게 닫힌 문앞에 도착한다.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차가운 냉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이 살짝 떨려온다. 하지만 난 이 문을 열어야 했고, 문 뒤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기에 열고 상황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커다란 화면에 나타나 있는 지도와 빨간 점들은 사고지점을 나타내는 거란 걸 물어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서로 어디로 배치가 되고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 지휘하느라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여기 있어봤자 방해만 될 듯해 그냥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가려는 찰나 중심가 부분에 커다랗게 빨간색 표시가 떴고 마치 위험하단 걸 알리는 듯이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다. 내가 찾고 있던 그였다.

 

 

"현화. 자네는 여기 남아."

"왜요? 이쪽 일은 제 담당이잖아요."

"...저건 누구를 뜻하는지 자네가 더 잘 알잖아."

 

 

걱정어린 저 눈빛. 진심이 담겨있지만, 걱정일지 아니면 동정을 담은 눈빛인지 알 수 없었다. 저런 표시가 나타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나뿐이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고 인재를 잃을 수 없다며 항상 이런 경우마다 나를 빼 온 거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내 팔을 붙잡으며 가지 말라는 말에 "상관 말아요. 내 일이에요."라고 쏘아붙이며 출동하는 무리 속에 섞여 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뒤통수가 무척이나 따갑게 느껴졌다. 차에 탄 인원들이 나를 한 번씩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원래 이런 임무 쪽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었고 더욱더 이번 같은 경우에는 감정적으로 나올 수 있단 이유로 계속 배제됐는데 이제 와서 같이 활동한다는 것에 관심을 두는 걸지도 모른다. 

 

 

"그만 쳐다봐요. 전 제 일을 하러 온 것 뿐이에요."

 

 

그 말 한마디에 시선을 돌리는듯한 느낌이 든다. 저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닌 나와 '그 사람'의 관계겠지. 차 안에는 적막이 흐르고 바깥의 소리가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보면 아마 현장 근처까지 온 듯했다. "도착했다."라는 말과 함께 일제히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갔고 어서 나가자고 말을 하려다 떨리는 손을 발견했는지"천천히 나오세요." 내 옆에서 묵묵히 운전하던 그는 걱정스럽단 목소리를 남기고 내렸다.

 

차 안에는 나 혼자 남아있었다. 손이 떨려오지만 차만 타면 이런다는 걸 그만이 알고 있었고, 그는 지금 내 옆에 없었기에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손목을 꽉- 붙잡았다. 어느 정도 떨림이 멈춰오고 손을 놓자 손목에는 빨갛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가만히 빨간 자국을 바라보다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차 문을 열어 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내가 내리지 않고 남아있던 시간은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들은 이미 바닥에 피를 흘리면서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없나- 라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부서진 건물잔해와 무기들, 피를 흘리면서 널브러진 동료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피를 밟아 생긴 발자국이었다.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이 일의 근원이자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따라가 보았다.

 

 

"어서 와. 현화."

 

 

발자국을 따라 도착한 곳은 아무도 없고 부서진 건물 잔해들만 곳곳에 널려있는 도시의 중심이었다. 높게 쌓아올려 진 잔해의 위해 누군가 앉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지만, 햇빛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면서 누가 부르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찌그러진 눈과 햇빛을 피하고자 손을 올린 사이 높은 곳에 올라앉아서 날 내려다보던 사람이 내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누군가의 힘으로 손을 강제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야."

"이거 놔요."

 

 

그늘이 져 있었고, 내 눈앞에는 그가 서 있었다. 신경질적인 말투로 내뱉었고 놓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손을 금방 놓아버리는 그였다. 놓자마자 잡혀있었던 손목 부분이 아려오기 시작했고 다른 손으로 움켜잡아 아픈 것을 풀어보기 위해 이리저리 손목을 움직이면서 그를 쳐다보자 뭐가 좋은 것인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그는 평소 계속 봐오던 모습과 똑같은 그였다. 임무나 임무를 나갈 때 입던 정장도 똑같았고, 그의 무기이자 상징인 방패도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변한 거라면 누군가의 죽임이 불필요한 경우라면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그였더라면 지금은 징표라도 되듯이 다른 사람의 피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닦아내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걷어 내려 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할려고 했는지 알아차린 그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 쪽으로 내 손을 끌어당겼다. 내 손을 잡은 그는 천천히 자신의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내리더니 입술 주변에 다다르자 따뜻하면서도 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히이익-!"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을 건데."

"갑자기 그러면 안 놀라요?"

 

 

깜짝놀라 자칫하면 주먹이 나갈뻔했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의 두근거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급하게 손을 빼면서 당황하는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옅은 미소를 짓는 그였다. 이런 장난은 치지 않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무슨 반응을 이끌어 내려는 건지는 몰라도 아까까지만 해도 맴돌던 긴장감은 이미 풀려버린 지 오래였다. 머릿속으로 천천히 마음먹은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이곳에서 이 일의 근원을 찾으려고, 이 일이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걸 알았기에 자발적으로 나왔었다는 것까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리고- 무엇을 할려 했더라?

 

 

"현ㅎ-?"

 

 

갑자기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전혀 몰랐다. 분명 스티브를 만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오는 터라 당황한 것까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점점 몽롱해지는 의식의 끝에 결국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고 끝 가지 붙잡고 있던 의식은 끊겨버렸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녀는 눈을 감고 쓰러질 뻔했지만 간신히 부축했다. 역시- 이 방법이 최선책이었다. 그녀의 귀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인이어를 빼낸 뒤, 손에 올려 힘을 꽉 쥐자 산산조각이 났고 근처에 있는 건물잔해 위에다가 버렸다. 안정적인 자세로 그녀를 안은 뒤, 근처에 놓아둔 수면가스의 통을 잠갔다. 나는 이 가스를 맡아도 아무렇지 않지만 이런 것에 대해 면역이 없는 그녀라면- 천천히 공기 중에 냄새를 썩이게 한다면 그녀는 금방 잠들 거라는 생각을 했고 예상대로 그녀는 잠들었다.

 

 

"완료하셨나요?"

"그래. 가지."

 

 

헬멧을 다시 눌러쓰자 한쪽 귀에서 짧은 잡음이 들려온 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본부에서의 연락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금방 간다는 말을 하자 나와 그녀를 데려갈 비행선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는 이내 연락이 끊겼다. 건물 잔해들 사이에 나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주변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오로지 내 귀에는 그녀의 작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현화."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깊은 잠에 빠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 편안한 자세로 잠든 그녀는 마치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듯해 보였다. 그래-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깊은 꿈에 빠져있어 줘.

 


 

폭신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그것을 꽉 잡고 얼굴을 비비면 얼굴에서도 기분 좋은 느낌이 똑같이 느껴진다. 조금 더- 조금 더 이곳에서 잠들어있고 싶어- 배를 덮고 있는 이불 같은 것을 잡아당기면서 몸을 웅크리면 이 촉감이 몸 전체에 퍼져 나간다.

 

하지만 그 생각도 얼마 가지 못하고 부스럭거리는 주변소리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거슬려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더듬거리다가 똑같은 부드러운 감촉에 두툼한 베개 같은 것을 잡아끌어 양 귀를 막아보지만, 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아- 조금만... 조금만 더 잘래요..."

 

 

눈도 뜨지 못하고 잠기운이 약하게 섞여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소리는 이내 멈추고 의자를 끄는듯한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고 더는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 불어오는 소리만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자 다시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잠이 들려 했지만, 갑자기 든 생각 하나가 잠을 달아나게 하였다. 혼자 사는 집에 누구랑 같이 있는 거지? 애초에 나는 임무 때문에 출동했었고-

 

 

"여기는 어디야...?"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한 하늘빛이 돌고 있는 침대보에 얇은 이불, 귀를 막았을 때 사용한 거 같은 하얀색 베개가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 살랑거리며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레이스로 장식되어있는 커튼은 바람을 따라 펄럭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긴장감 때문인지 침대보 위에 올려진 손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입고 있던 내 옷은 이미 하얀색 드레스로 바뀌어 있었고 묶여있던 머리도 풀어져 있었다. 이 방 어디에도 쓰러지기 전에 입고 있던,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어났네, 현화."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책을 덮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내 손 위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손 위에 올려진 손을 따라 시선이 멈춘 곳에는 스티브-그가 앉아있었다. 손을 빼내려 했지만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살짝 힘을 주어 가볍게 내 손을 누르는 그였다. 그와 만났을 때 내 손목을 잡고 있던 힘보다는 약하게 느껴졌다.

 

 

"여긴 어디에요? 왜 절 데려온 거에요?"

"쉴드가 찾지 못하는 곳."

 

 

짧은 대답을 하고는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그였다. 책을 옮길 때에도 조금 멀리 떨어진 컵을 챙겨 들어 나에게 건넬 때까지도 내 손을 누르고 있는 힘을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쉴드가 찾지 못하는 곳이라면 도망가지도 못해요." 라고 컵을 받아들면서 말을 하자 금방 손을 떼는 그였다. 쉴드가 찾아내지 못한 곳이라면 조사를 계속해오던 나도 발견하지 못한 곳이란 걸 단번에 직감했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가정해도 금방 붙잡혀올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를 한번 바라보고 손에 들린 하얀색 컵 안을 보았다. 컵 안에는 붉은빛이 도는 시원한 음료가 들어있었다. 한 모금을 마시니 석류 맛이 입안 곳곳에 퍼져 나간다. 

 

 

"쉴드가 찾지 못하는 곳도 있었네요. 거의 모든 곳을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쉴드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에 깍지를 낀 손은 편안하게 무릎 위에 올린 채 나를 바라보는 스티브였다. 의식이 끊기기 전에 보았던 옷과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라곤 징표라도 되듯 묻어있던 피가 말끔하게 지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평소 봐오던 모습을 변한 거 없이 그대로라는걸 보여주듯이 예전과 무척이나 똑같았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건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 엄지손가락이 깍지낀 채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지면서 빤히 바라보자 내 표정을 읽었는지 손을 풀고는 허벅지 위에 올려놓는 그였다.

 

 

"...이제 여기서 지내면 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말 그대로야. 이제 쉴드와 엮일 없이 여기서 같이 지내면 돼."

 

 

자칫하다 손에 들린 컵을 침대 위에 엎을뻔했다.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나더니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오고 그 어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 여기서 지내라니. 쉴드는? 다른 동료는?

 

생각할 시간이라도 줄려는 듯이 이 방을 나가려는 스티브 앞을 가로막아야만 한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침대에서 벗어나자마자 몸이 살짝 기우뚱했지만 금방 다시 중심을 잡고 그의 옷깃을 잡고서 앞을 가로막았다.

 

 

"돌려보내 줘요. 쉴드로 돌아가야 해요."

"아니 쉴드로는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

"왜요? 계속 의지하고 버텨온 곳이에요. 전 돌아가야만 해요. 돌려보내지 않을 거라면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줘요."

 

 

설명해주길 아무리 바라도 스티브는 내 양팔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잡고 있던 옷깃을 놓자 내 양팔에 느껴지던 힘도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대답해주길 바랬지만 스티브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이곳을 나갔다. 다시 붙잡아서 묻고 싶었지만 나갈 수 있는 문은 굳게 잠겨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열리지 않는 문은 내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단 걸 알려주고 있었다.

 


 

망설였다. 어떻게든 이곳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완강히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만을 주장한다면 그것마저 꺾어버릴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표정에, 손짓에 망설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그녀의 눈빛에 생각이 무뎌졌고, 체온에 굳게 먹은 마음이 흔들렸고, 목소리에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하였다.

 

다시 심호흡하고 들어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이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녀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있다가 다시올께."

 

 

복도를 지나가면서 힐끔- 쳐다보는 사람들, 나를 붙잡고 "그녀는?"이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시하거나 아직이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작은 실마리라도 잡아 대화를 이어 나가보기 위해 그녀의 물건이나 좋아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이곳에 데리고 올 때 입고 있던 옷이나 소지품을 챙기고 부탁해놓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들고선 다시 그 방앞으로 향했다.

 

분명 자신 있게 열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 다시 서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엉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 생각했다.

 

 

"지금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다시 한 번 되짚으면서 정리하자 가득 채우고 있던 복잡한 생각들은 하나하나 매듭풀 듯이 풀리더니 천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해줄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간 뒤 한참을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가만히 있다가 발끝부터 느껴지는 추위에 엉금엉금 침대로 기어가 이불을 몸에 감아 눈만 내밀고선 침대에 누웠다.

 

아무말 없이 그는 떠났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이유를 적어도 나에만큼은 설명해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고 무언갈 망설이는 거 같았다. 무엇을 망설이는 거지? 골똘히 생각을 해보아도 왜 그런 행동을 내 앞에서만 보인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치 지금 내앞에서 보이는 그런 행동들은 예전의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들어오는지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뜨고 있던 눈을 지그시 감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듯한 소리, 스르륵- 의자에 무언가를 걸쳐놓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나 난 뒤 그 뒤로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계속 가만히 소리에 집중해도 불어 들어오는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눈을 뜨고 확인하려는 순간 침대에 앉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안하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는 바로 나가버리는 그였다.

멍하니 그가 나가버린 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건 모든 게 변해버린 것만 같은 그여도 아직은 어딘가에 내가 알고있는 그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결국은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물건들 돌려주고, 허기가 졌을까- 작은 걱정에 평소에 즐겨 먹던 음식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곳으로 넘어왔는지, 내가 왜 당신을 데려왔는지 모든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다시 한 번 그녀를 보니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들이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이 없어져 버렸다.

 

내가 겪은 일 때문에, 내 욕심 때문에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내가 망설이는 바람에 그녀에게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해주지도 못했다. 

 

 

"...미안하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다른 말들도 이어서 말하고 싶었지만, 곤히 잠든 그녀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잠든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방을 나왔다.

 

이번 상황에서만큼은 결단력이 무척이나 필요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왜 자꾸 그녀를 보면 망설이는 걸까. 마치 새장 속의 새처럼- 그 어떤 거에도 물들이고 싶지 않은 걸까? 그녀를 보면 볼수록 결심해온 것들이 흔들리고 망설여지게 된다.

 

 

"한동안은 만나면 안될 거 같군."

 

 

한동안 만나지 않는다면 이런 망설임도 없어지겠지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한동안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식사라던가 옷들은 검은색과 빨간색들이 섞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이 방안이 전부였다. 책을 읽는다든가, 창밖으로 밖의 경치를 구경한다든가, 아니면 수면을 취한다는 등의 한정적인 행동들 뿐이었다.

 

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하지만 이 방을 나섰을 때 겪게 될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기에 그 생각들은 이미 접어 없애버린 지 오래였다. 멍하니 창밖을 통해 풍경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냈었다.

 

달빛이 들어오는 어느 날 밤, 그날과 똑같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이불을 덮고 베개를 끌어안고 단잠에 빠져있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단잠은 깨지고 말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침대 한쪽 부분에 무게가 쏠리는 느낌이 들어 몸을 일으켜 보자 그곳에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그가 엎드려 있었다.

 

 

"스티브?"

 

 

오랜만에 본 그는 처음 다시 만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임무를 나갈 때 입고 있던 복장과 똑같았고, 그의 무기이자 상징인 방패는 방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 전투를 끝내고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의 징표라도 되는 것인지 몸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더라면 지금은 슬픔에 잠겨있는 눈빛이었다.

 

다시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뻗어오는 손길에 그는 살짝 주춤하는 듯 해 보였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하나하나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때려는 순간 그의 손이 내 손 위로 올라왔다.

 

 

"가지 말아줘."

"...어디 안 가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내 허리 부분으로 손을 뻗은 그는 허리를 감싸고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 동안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또다시 나타난 걸까. 생각이라도 갑자기 바꾼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켰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였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나는 그를 달래주는 행동밖에 할 수 없었다.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돌려받은 휴대폰에서는 그 어떤 부재중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쉴드에서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생각하는 것을 강요받고 타협 받은 것도 아녔다. 이곳에서 나는 나인 그대로 남아있었다. 똑같은 일과를 보내고 달빛과 함께 밤바람이 불어올 때쯤 찾아오는 그를 맞이하고 조용히 토닥여주는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내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그가 왜 그곳으로 넘어갔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그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고 예전과 똑같이 대한다면 내 앞에서의 그는 과거의 모습과 똑같기에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드림전투합작 : http://boiboss.wix.com/battle-of-yume

(링크가 남아있을지 모르겠네요 ;ㅅ;)

 

 

 

1.

샌드백을 있는 힘껏 치다 못해 힘을 실은 마지막 타격을 맞고 밑 부분이 터져 모래가 쏟아져 나온다. 알맹이는 빠져나가고 가죽만 남은 샌드백을 붙잡고 거친 호흡만을 내쉬는 그의 뒤에서 나는 그냥 조용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진정이 되었는지 뒤를 돌아 내가 온 것을 확인하더니 평소와 같은 다정한 목소리로 "현화."하고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에게 전해주기 위해 들고 온 수건을 꽉- 잡으며 응답하듯 "스티브."라고 그의 이름을 작게 불렀다. 이상하게도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위태롭게 느껴졌다.

 

"괜찮아요? 평소보다 더 무리하는 거 같아요."

 

최근 들어 다른 날보다 트레이닝룸에 자주 있기 시작했고 터져나가는 샌드백의 수도 늘어갔다. 주변 사람들은 마치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이 모르는 척 행동했지만 그런 그의 행동이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어보아도 지금처럼 "괜찮네. 별일 아니니까."라며 질문에 대한 답을 피해왔다. 마치 내가 알면 안 된다는 것처럼.

 

"캡틴 이제 오셔야 할 거 같아요."

"아…. 그래 가지."

 

그를 찾으러 온 동료를 보고 순간 표정이 굳어졌지만 이내 풀리고는 금방 간다는 말을 남긴 뒤 자신의 짐을 정리하고 양손에 가득 들고는 "저녁에 봐, 현화."라는 인사를 하고 트레이닝룸을 나갔다. 잠깐 굳어진 그의 표정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결하는 것만으로 벅찼기에 질문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아직 그의 흔적이 남아있는 트레이닝룸을 벗어났다.

그의 뒷모습을 자주 봐왔다. 자신의 신념, 자신감이 가득 넘쳐 보이던 그의 등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그동안 지켜온 것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그의 등이었다.

 

 

 

2.

캡틴 아메리카가 사라졌다. 정확하게는 임무수행 중 신호가 끊기면서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이곳에 있는 모두는 '캡틴 아메리카'인 그가 자발적으로 신호를 끊고 사라졌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같이 임무수행을 하기 위해 나갔던 동료의 말에 의하면 평소와 같이 정확하게 지시를 내리고 소탕하기 위해 혼자서 그곳에 뛰어 들어갔다고 하지만 모든 일을 해결한 그 이후에는 볼 수 없었고 상부의 명령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며 하나같이 똑같은 진술만을 하고 있었다.

 

"괜찮겠어? 그 일을 맡아도?"

"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잖아요."

 

그가 사라진 흔적을 찾는 임무를 맡았다. 아무도 나서서 일을 해결하려고, 맡으려는 행동조차 하지 않았기에 '그나마' 제일 가까웠던 나에게로 넘어온 거나 다름없었지만. 걱정스러워하는 나타샤에게 괜찮을 거라며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그래. 무슨 일 생기면 말해."라는 그녀다운 대답을 해주었다.

마지막 임무 수행 장소였던, 그가 사라진 그곳은 무척이나 넓었고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같이 나온 동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자 마지막으로 신호가 끊긴 곳부터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단 의견을 냈다. 그러자 마치 입을 맞춘 것처럼 "그러죠."라는 대답이 들려왔고 곳곳에 흩어져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찾기 시작한 지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는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때 한구석에서 "찾았습니다!" 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곳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었던 물건을 발견했다.

 

"이건…"

"임무 중에 착용하고 있던 물건입니다."

 

손에 들린 물건을 가만히 바라만 보자 같이 임무를 나갔던 동료가 그 물건이 무엇인지 안다는 듯이 말을 했다. 마지막으로 신호를 주고받은, 마지막까지 연결되어있던 그 물건은 이번이 끝이라는 듯이, 연을 끊어버리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스티브-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버린 거야.

 

 

 

3.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운다. 어떻게 이 건물을 뚫고 들어온 것인지 몰라도 하이드라가 이 건물에 들어온 건 확실했다. 대피하는 사람들, 전투를 준비하는 사람들, 상황을 보고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일을 분담하는 지금 나는 전투를 준비하기 위해 신발 끈을 꽉 조여 맸다. 주변 상황을 정리하던 그는 준비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급하게 달려와 나를 가로막았다.

 

"민간인이니 피하는 게-"

"저도 엄연한 조력자의 입장이에요. 특히 위험한 상황이라면 가리지 않고 도움을 주는 게 맞잖아요."

 

뒤에 따라올 잔소리 같은 말이 무엇인지 알기에 더는 내뱉기 전에 말을 가로챘다. 나의 반응에 화가 난 것인지 무슨 말을 내뱉으려 하는 듯 했지만 스스로 화를 참고는 "가 봐."라는 명령적인 말-허락하는 말을 하고는 자기 일을 처리하기 위해 복도를 따라 사라졌다. 심호흡을 한번 크게 내쉬고는 연락을 위해 인이어를 귀에 낀 뒤 사이렌 소리를 따라 일의 근원지로 향했다.

도착한 그곳은 무척이나 참혹했다. 건물 벽의 곳곳과 그곳에 있던 물건들은 부서진지 오래인 듯 해 보였다. 먼저 출발했던 동료는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곳곳에 작은 신음을 내며 쓰러져있었다. 가벼운 상처만을 입은듯해 보였지만 정확한 상황파악을 하기위해 작게 발을 한걸음 내딛자 경고신호를 보내듯 내 몸과 가까운 위치로 무언가가 날아왔다.

 

"이 방패는…"

"현화!! 당장 그곳에서 도망쳐!!"

 

인이어를 통해 시끄럽게 외치는 말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내 신경과 시선은 내 옆에 박혀있는 방패에만 눈길이 가 있었다. 익숙한 색 배열과 모양은 그를 상징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손을 올려 만지려는 순간 자연스럽게 빠져나가 아무도 없는 곳으로 날아가더니 무언가에 의해 고정되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는 소리가 거슬려 인이어를 빼 바닥에 던져버리고 방패가 사라진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현화."

 

걸음을 멈추게 하는,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울려 퍼진다. 손톱자국이 남을 정도로 꽉 쥔 손은 이미 힘이 풀린 지 오래됐고 다리는 힘이 풀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버릴 것만 같았다. 여느 때와 같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손을 내밀며 잡아주길 기다리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 중앙에 있는 정의를 상징하는듯했던 그 문양이 아닌, 하이드라의 문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째서 스티브는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당신은, 당신은 내가 알던 '캡틴 아메리카'인 스티브 로저스가 아니야."

 

 

 

4.

철컥- 총구를 겨누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는 내 팔을 잡아 떨어진 건물잔해 뒤로 숨겼다. 이게 무슨 행동이냐고 물을 틈도 없이 엄청난 총알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최대한 방어를 하던 그는 세례가 멈추자마자 앞에 놓인 건물 잔해를 밟으면서 방패를 던져 앞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당장 막아!"라는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내 커다란 타격소리와 함께 묻혔다. 칼이라던가 기타 근접 적으로 공격이 가능한 무기를 들고 덤비는 사람들을 손쉽게 제압한 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방패를 발로 밟아 가볍게 띄운 뒤 2층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의 공격은 짧은 시간 안에 끝났고 많은 쉴드의 동료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캡틴 우린 동료였잖아…"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내가 시선을 피하자마자 바로 무언가가 뜯겨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진정이 되질 않는다. 그-스티브가 방패를 공격한 것 때문이 아니라 같이 있는, 그동안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던 내가 있는데도 서슴없이 공격했다는 점에서 진정이 되질 않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는 이내 내 옆에서 멈췄고, 검게 그림자가 드리우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피투성이가 되어버린-다른 사람들의 피로 보이지만-그가 예전에 바라보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고-"

 

익숙하다는 듯이 피를 닦아낸 뒤, 한쪽 손의 장갑을 벗어 나에게로 손을 내미는 스티브였다.

 

"이런 전투를 겪지 않게 해줄게. 어차피- 돌아간다 해도 쉴드의 사람들은 예전처럼 대해주지 않을 거야. 아- 한 사람만 빼고."

 

저 손을 잡으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전투에서 '패배'한거나 다름없는 나는 돌아가면 어떤 대우를 받을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트레이너와 챔피언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무제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특별한 관계  (1) 2020.03.31
스티브N제 :: 반짝반짝, 셋  (0) 2016.10.30
로키 드림 :: 가깝고도 먼 사이  (0) 2016.09.13

"이번 피해 관련 보고서야."

 

부탁했던 자료를 툭- 하고 무심하게 던지고는 "왜 이런 거를 찾아보려는 거지. 너와 관련된 일이 아니잖아."라는 짧은 말을 덧붙이고는 그 사람은 사라진다.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할까 했지만 덧붙여봐야 서로 좋을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무시하고 파일을 열에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뉴욕의 테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건물, 폐허 같다고 느껴질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심에서 서로의 가족, 친구 등을 찾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번 회의에서도 들었듯이 아마 복구되려면 오래 걸리겠지-라는 생각으로 다음 장으로 넘기자 이 일을 벌인 사람으로 추정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특히 리더로 추정되는 사람은 더더욱 말이다.

 

미국의 영웅, 전쟁을 끝낸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는 얼음 안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영웅의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그것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은 사건-내가 알지 못하는 사건-에 의해 그는 정의의 편이 아닌 악당, 빌련 들의 편에 서서 활동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다들 그를 더는 쉴드의 일원이 아닌 하이드라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적대시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를 이곳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했던 작전들을 전부 다 찾아보고, 빌런이 되어버린 후의 행적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직도 그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야?"

"네. 적어도 원래대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하고요."

"...그에 관해 조사를 하는 건 모두 알고 있고 말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

 

모두 나에게 미친 짓을 그만두라고 말을 할 때 뒤에서 챙겨주고 걱정해주었던 나타샤였고 저 말의 뜻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요즘 하이드라 쪽에서의 움직임도 수상쩍기에 더욱이 조심하라는 말에 괜찮다며,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며 나타샤를 안심시키고 난 후 도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해복구 중인 그곳은 서류에서 보았던 사진보다 상당히 괜찮아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로 위 가득 쌓여있던 건물 잔해들은 듬성듬성 보일 뿐 정리가 되어있었고 곳곳의 안전지대인 곳에서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하며 이곳이 원래의 모습을 하루빨리 되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도... 없구나..."

 

이곳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익숙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재빠르게 도망가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를 쫓아 달려가자 막다른 길이 나왔고 잘못 본 걸지도 몰라 돌아가려고 뒤를 돈 순간 내가 그렇게 찾고 싶었던 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옷도 예전에 봐오던 옷이 아니다. 그에게 풍겨오던 냄새는 땀과 노력이라고 느껴지는 냄새가 풍겨왔다면 지금은 피 냄새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거라고는 체온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꽉 껴안아오는 그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렇게 애를 쓰면 쓸수록 그는 더욱 힘을 주어 나를 껴안았다. 결국, 그를 뿌리치고 품에서 벗어나 그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제가 당신의 흔적을 따라 당신을 찾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날 줄 몰랐네요."

"내가 내 연인을 만나러 오는 게 잘못 된 건가."

 

연인- 아직도 우리의 관계를 옭아매고 있는 단어. 예전에는 이 단어가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평범했던 우리의 관계가 그 일이 있는 후에는 '특별한'관계로 만들어 버렸기에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내 얼굴을 붙잡은 뒤 천천히 쓸어내리는 스티브의 손길이 느껴지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분명 평소에도 하던 행동이지만 예전과 다른 느낌이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동물의 느낌 같았다. 턱 끝에 닿은 손을 피해 고개를 확 돌린 뒤 살짝 뒤로 물러나자 "이런 반응은 예상했지만 직접 당하니 기분이 묘한걸."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연인이라니 소름이 끼치도록 듣기 좋은 말이네요. 그래서 무슨 일이죠. 그동안 사건을 일으키고 자취를 항상 감춰왔잖아요."

"글쎄. 이번만큼은 직접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도망가듯 뒤로 물러서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는 스티브. 어느새 등 뒤에는 골목의 끝이 닿아 있었고 어디로 도망가지 못한 채 내 앞을 가로막은 스티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 비켜 주다는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멍청한 심장은 아주 빠른 속도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관계로 얽혀버려서 미안하단 말을 하려고 왔네."

 

어떤 말을 할까- 수십 가지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나온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미 이 도시를 구하는 영웅이 되어있더군."

"전 제가 선택한 길을 가는것 뿐이에요."

 

나의 대답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스티브였다. 왜, 어째서?

 

"영웅이 되었으니 선택을 하는데 힘이 들지도 모르겠군... 나와 같이 가지 않겠나?"

 

손을 뻗어 마치 '내 손을 잡아줘'라고 아우성치는듯한 모습이었다.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손을 쳐내면서 의사표시를 내보이자 "역시 그럴 것 같았네."라며 손을 거둬들이는 스티브였다. 골목의 입구를 한번 바라보더니 등을 돌려 입구를 향해 걸어가다 멈칫하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면 아마 손을 잡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다음에 다시 만나러 올게. 나의 연인."

 

그 이상의 말은 더 하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스티브였다. 사라지자마자 온몸의 힘이 쫙 풀리면서 주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이 관계를 끝내려면 서로의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나도 알고 스티브도 알고 있는 해결방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몰라도 서로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서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 방법만, 돌려놓을 방법만 고집하고 있다.

 

아마 서로의 고집을 꺾지 못하면, 한쪽이 포기하지 못하면 이 특별한 관계는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드림 : 무제  (0) 2020.03.31
스티브 드림 : 전투합작1  (0) 2020.03.31
스티브N제 :: 반짝반짝, 셋  (0) 2016.10.30
로키 드림 :: 가깝고도 먼 사이  (0) 2016.09.13
스티브 드림물 :: 비어있는 왼손 약지  (1) 2016.07.21

스티브 N제 시리즈 :: 반짝반짝


5. 네가 있는 곳은 언제나


6. 운동장에서 너의 주위는


드림 평일 전력 DOLCE 제 40회 주제 : 가깝고도 먼 사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남자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쓰러진 자신을 구해준 그녀를, 인간이 어딜 감히 아스가르드인을 막대하냐고 소리쳤을 때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라며 덤덤한 얼굴로 오히려 욕설을 내뱉던 그녀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지워버리지만,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람에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지만, 평소라면 텔레비전 소리로 시끄러울 거실이 조용함에 잠겨있었다. 식탁 위로 시선을 돌리자 무언가로 덮여있는 접시와 노란 포스트잇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잠들어 있는 거 같아서 깨우지 않았어요. 간단한 식사거리 만들어 놓고 가니까 일어나면 먹어요.'


그녀의 글씨였다. 애초에 이 작은 집에 살던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으니까. 덮개-뚜껑을 열어보자 정갈하게 놓인 샌드위치와 과일 몇 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외출하는 날은 두 가지로 오후에 집을 나서는 날과 오전에 집을 나서는 날로 나누어진다. 오후에 집을 나서는 날은 그녀의 직장에 출근하는 날이지만 오전, 오늘 같은 날은 아무리 물어보아도 "사생활이니까 묻지 마요."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접시 위에 올려진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감자, 양파- 그녀가 좋아하는 재료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맛있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의 음식들, 특히 그녀가 만들어주는 음식들은 입맛에 무척이나 맞았다.



+



"설마 이걸 다 해놓은 거에요?"


늦은시간 그녀가 돌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나갔는지 바닥에 뒹구는 신발의 소리가 요란하다. 오자마자 부엌으로 향한 그녀는 깔끔하게 씻겨진 식기들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그야 이곳에 같이 살아가는 처지라면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무덤덤한 말을 들은 그녀는 이내 그에게로 다가와 "잘했어요." 라며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쓰다듬고는 씻으러 가보겠다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다가 그녀의 손길이 닿은 머리부분을 조심스럽게 만져본다. 스킨십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못된 스킨십은 서로의 싸움을 불러오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자연스럽게 행하는 그녀의 신체접촉도 어쩌면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진걸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서류상으로도, 여러 사람의 말로도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있다.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 토르의 동생, 위험인물 등 지겨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다가 그가 우리 집 주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지 이곳에 돌아온 것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돌봐주고 주변인들 모르게 돌려보내자고 다짐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이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었다. 아니 익숙하게 느껴졌던걸 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이 무서웠던 걸까. 호크아이에게 들었던 이야기? 스티브에게 들었던 이야기? 서류상으로 남아있는 그의 만행들? 아니면 알게 모르게 돌변할지도 모르는 그의 행동들? 아직도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난 짐작할 수 없다.


"수고했어."


그는 나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귀가할 때마다 건네는 저 말이 한집에 같이 살면서 친한 사람에게 건네는 저 말이 언제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



가끔씩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면 멈칫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행동도, 눈동자도 멈춰버린 체 내 시선을 피하기 일쑤다. 그녀의 그런 행동도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형의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뉴스나 여러 가지 매체로 나에 관한 이야기를 몇번 접했다면 저런 행동들을 보이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였다.


"이만 쉴게요. 잘 자요."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방에 먼저 들어가는 것은 나다.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조금 더 편안하게 휴식을 만끽할 수 있겠지. 아하- 짙은 한숨이 입 밖으로 나온다. 어느 정도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던걸 지도 모르겠다.



+



편안하게 대해야지, 편안하게 대해야지. 몇 번이고 이 말을 가슴속에서 되뇐다. 그가 돌아가거나, 다른 곳에서 지내지 않는 이상 이 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상 그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하지만 "그는 위험인물이야."라는  말들이 떠오르면서 정신을 어지럽게 만든다. 종종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해버리면 그의 표정이 굳어버리는 게 눈에 들어오고 '아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려는 게 아녔다?


"....먼저 들어가지."


지끈거리는지 머리를 감싸 쥐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린다. 아무도 없는 거실엔 아직도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하아- 쓰러지듯이 소파 위에 앉는다. 계속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그에게 보이는 내 행동들에 대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와의 관계진전에 힘을 써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안 보이는 장애물들이 그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드림 평일 전력 DOLCE 제 32회 주제 :: 비어있는 왼손 약지

스티브 사망요소 有 / 나타샤 시점 전개



스티브 로저스가 떠나갔다. 임무 중에 발생한 사고 때문인 사망이었고 우리 사이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 모든 국민은 슬픔에 빠져있었다. 그녀는 더더욱이나 커다란 슬픔에 빠져있었고 장례를 치르고 마무리하는 그 순간까지 스티브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울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티브를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이라던가 기념비, 추모행사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점차 기억 속에서 잊혀갔다. 우리은 '스티브 로저스'라던가 '캡틴'등을 입에 올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직 회복되지 못한 그녀를 배려하는 마음에서.


"현화, 괜찮은 거 맞아?"

"네. 저는 괜찮아요. 괜찮아야죠."


장례를 치르고 한동안 만나지 못한 그녀가 걱정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그녀의 친구가 "현화와 연락이 안 되고 있어요. 제가 바빠서 찾아가지 못할 거 같은데 나타샤 씨가 대신 찾아갈 수 있나요?"라는 말 때문에 걱정이 되어 찾아왔지만, 그녀의 상태는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항상 단정하게 빗어 유지하고 있던 곱슬머리는 마치 사자 갈퀴처럼 뒤엉켜 있었고, 계속해서 울었는지 눈가는 새빨개져 있었고 무척이나 수척해 보였다.

휘청거리며 간신히 문에 기대어 서 있는 그녀를 부축해 집안으로 들어가자 집안은 생각보다 말끔했다. 하지만 종종 집을 찾아왔을 때 보았던 사진이라던가 인형 같은 스티브와 함께했던 물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단 여기 앉아있어. 마실 물이라도 가져오게."

"저는 괜찮아요."


"전혀 괜찮지 않아 보여." 정말로 괜찮지 않아 보였다. 하얀색 머그잔을 집어 시원한 물을 따르면서 그녀를 한번 바라보았다. 가만히 앉아 멍하니 자신의 발을 바라보는 그녀였고 주방에서도 스티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물을 건네주고 조금이나마 괜찮아지면 돌아갈까-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그녀의 손에 자리 잡고 있는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와의 흔적을 아직 지우지 못했다는 것처럼 반지는 왼손 약지에 여전히 자리 잡고 있었다. "반지는 아직 끼고 있네?"라고 넌지시 물어볼까 했지만, 그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에 조용히 말을 삼키고 "이제 가볼게. 괜찮아지면 그때 돌아와."라는 말을 대신 꺼낸 뒤에 집을 나왔다. 발걸음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아직 남아있는 반지가 그녀의 마지막 희망 같은 느낌이었기에 그녀를 계속 두어도 되나- 싶은 생각마저 들었지만 이미 나온 이상, 그녀가 극복할 수 있게 기다려 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녀의 집에 들렀다 온 지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선 영웅으로 자리 잡으면서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평소와 같은 하류들이 지나갈 뿐이었다. 여전히 걱정이 되어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는 않았고 종종 문자만 올 뿐 보지 못했다. "역시 한 번 더 찾아가는 게 좋을 거 같아."라고 그녀의 집에 찾아가려는 찰나 그녀가 돌아왔다. 처음 보았을 때보다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활짝 웃으면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발견하고는 몰려든 사람들에게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며 말을 연신 하며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고 있었고 나를 발견한 그녀는 달려오더니 "그때 찾아와줘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며 내 손을 잡고서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드디어 괜찮아졌구나- 시선을 그녀에게서 왼손으로 옮기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스티브와의 반지는 보이지 않았다.


"반지는 어디 갔어?"


그녀의 손을 잡고 반지의 행방을 묻자 시선을 피하더니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였다. 꽉 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자 천천히 자신의 뒤로 손을 숨기는 그녀였다.


"말했잖아요. 저는 이제 괜찮다고요."


여전히 그녀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만 누가 보아도 어색한 미소를. 그리고 연이어 들려오는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 중얼거리는 입술, "아마도요." 라고 중얼거린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하고 올게요."라며 황급히 자리를 떠나갔다. 그녀의 왼손 약지는 이제 비어있고, 그녀의 눈동자도 공허하게 비어있다.

'Novel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N제 :: 반짝반짝, 셋  (0) 2016.10.30
로키 드림 :: 가깝고도 먼 사이  (0) 2016.09.13
스티브 드림물 :: 불면증  (0) 2016.06.25
스티브 드림물 :: 부스스한 머리  (0) 2016.05.19
스티브 드림물 :: 거리감  (0) 2016.05.10

- 당신의 수호천사 117회 주제 : 불면증

- 드림주有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나도 눈에는 피로감이 계속 남아있고 계속된 엄청난 두통이 밀려온다. 저혈압 때문인 걸까 아니면 두통 때문인 걸까 몸을 일으키지만 휘청거려 뒤로 넘어질 듯하다 침대에 다시 주저앉아버린다.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한참 동안 쥐어 잡고 앉아있다 조금 가라앉은 뒤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해 차가운 물을 한 컵 따라 마셨다. 천천히 차가움이 퍼져 나가면서 머리가 개운해지기 시작했다. 물컵을 싱크대 안에 넣어둔 뒤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거울을 한 번 바라보았다. 얼굴 끝까지 내려올 듯한 눈그늘과 정리가 안 돼 부스스해진 머리, '나 잠 못 잤어요'라고 얼굴에 대놓고 써놓은 듯한 몰골이었다.


"아아- 왜 이래-"


정말 몰골이 가관이었다. 요 며칠 동안 거울도 안 보고, 잠을 어떻게든 자보기 위해 뒤척이고, 좋다는 음식이나, 노래, 향초 등 할 수 있는 거라곤 다 해본 거 같았지만 정작 효과는 전혀 없었다. 세 시간. 약속시각까지 세 시간이나 남았다. 잠자고 일어나서 최대한 빠르게 준비하고 나서 가는 길에 얼추 마무리 지으면 약속시각에 맞춰 도착할지도 모른다. 화장실을 빠르게 나가다 다시 한 번 휘청거렸지만 다시 한 번 중심을 잡고 커튼을 치고 난 뒤 이불 안으로 파고들어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눈을감고 양을 세는 것을 해보았지만, 농장에 뛰어놀던 양들은 이내 악몽으로 변해 하나하나 자취를 감추었고, 잠에 좋다는 소리를 들어보아도 조용했던 소리는 이내 시끄러운 소음으로 변해 귀 안과 머릿속을 헤집어 놓았다. 향초를 켜도 향긋하던 냄새는 이내 역겨운 냄새로 변해 속을 뒤집어 놓았다. 잠을 잘 듯 말 듯하면 늘 항상 꾸던 악몽이 다시 내 잠을 방해해 눈을 뜨기 일쑤였다. 뒤집어썼다, 일어났다를 몇 번이고 반복하니 조금 더 지체했다간 약속시각에 늦을 시간이 되어버렸다.


이불 밖으로 나오다 어지럼증 때문에 다시 휘청했고, 엄청난 두통과 졸음이 몰려오지만, 정신력으로 버티면서 준비했다. 옷은 입는 둥 마는 둥했고, 퀭해진 얼굴은 화장으로 가리려고 노력했지만 몰려오는 졸음 때문에 이게 화장인 걸까- 사람 얼굴인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이대로 나갈 수 없어. 손에 들고 있던 화장품을 내려놓고 화장대 구석에 놓여있던 클렌징티슈를 집어들어 화장한 얼굴을 대충 지운 뒤 휴대전화를 집어들어 그에게 전화했다. 멀쩡한 모습이 아닌 내 상태에서 그를 만난다면 아마 즐거워야 하는 하루를 망칠 것이 뻔했다.


"스티브? 저에요. 오늘은 만나지 못할듯해요."

[현화, 목소리가 무척 피곤한 거 같은데- 잠을 못 잔 건가?]

"하하...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요. 미안해요."


그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일주일이 다 돼가도록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으니 이런 반응 나오는 게 당연한걸 지도 모르겠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전화를 끊고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침대 위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다시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 가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벨을 누르는 소리가 희미해지던 정신을 붙잡게 하였다.


"스티브?"

"현화. 역시 잠을 못 잤구나."


문을 열고 보인 건 과일이 한가득 들어있는 봉지를 들고 서 있는 스티브가 있었다. 멍하니 스티브를 바라보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집안으로 들어왔고 살짝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되돌아와 내 손을 잡고 소파로 향해갔다. "잠시만."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과일이 들어있는 봉지를 부엌에다 내려놓은 뒤 다시 다가온 그였다.


"무슨 일이에요? 돌아간 거 아니었어요?"

"걱정이 돼서. 피곤해 보이는 목소리가 걸렸거든."


뭐에요- 만 연발하면서 그의 손길을 따라 침대에 앉고,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갔다. 이불 밖으로 빠져나와 있는 한 손은 그의 손에 잡혀있었고 그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가만히 있었다. 뭐지? 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그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꺼내었다. 누가 사고를 쳤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다른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했다는 등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듯한 이야기들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를 치며 즐겁게 듣고 있을 때 조금씩 눈꺼풀이 무더위 지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내려오면서 점점 더 그의 목소리는 멀어져만 갔다.


-


"그래서 나타샤가-"


얘기를 하던 도중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와 뒤를 돌아보니 피곤해 보이던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잡고 있던 손을 천천히 놓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평온하게 잠들어있는 얼굴은 곳곳에 피곤함이 가득 묻어있었다. 잠든 그녀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가 이번에는 오랜만에 깊고 평온한 잠에 가득 취했으면 좋겠다.


"잘 자. 현화."

드림 평일 전력 DOLCE 14회 주제 : 부스스한 머리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귀에 무척이나 거슬린다. 알람을 끌려고 침대 머리 쪽으로 손을 뻗어 더듬더듬 거렸지만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알람시계는 보이지 않았다. 알람 소리는 계속해서 귀에 거슬렸고 자세히 들어보니 평소 쓰던 알람이 아니었다. 마치 토니가 쓰던 휴대전화기 벨 소리 같은- 그런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뭐지- 하고 몸을 일으켜 소리의 근원을 찾아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거군."


바로 옆에 있는 탁자 위, 연한 하늘색 케이스에 빨강, 파랑, 은색의 별장식들이 이어 달린 장식품이 달린 휴대전화기이 무척이나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일어나]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알람 창을 밀어 끈 뒤 다시 침대 안으로 몸을 깊숙이 옮겼지만, 옆에서 이상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분명히 이 방은 나 혼자 쓰는 방이었고, 누구와도 같이 자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았던 눈을 안간힘을 주어 다시 떠 옆을 보자  자신의 체구보다 훨씬 큰 하얀색 옷을 입고 있는 그녀가 누워 잠들어 있었다.


"    !!"


너무 놀라면 비명 같은 것을 지를 때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 있고, 그것을 내가 직접 경험하게 될 줄 몰랐다. 왜 그녀가 내방에 있는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도 얼마 가지 못했다. 연한 하늘색을 띤 벽지와 주제를 정한 듯 방안과 어우러지게 꾸며진 가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지내는 방과 확연히 분위기가 달랐고 이방의 주인은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든 그녀라는 걸 맞추는데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현화-?"


어제의 일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기에 그녀에게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려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서 흔들어 깨워보았다. "으응-"이라는 짧은 신음을 내면서 짜증을 내며 돌아눕더니 다시 새근새근- 잠든 그녀의 숨소리가 들려온다.


"일어나봐야 될 것 같네."


깨울까말까 고민했지만 이미 밖은 환하게 밝아왔고, 사람들이 활동을 시작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알람이 울린 시간으로 보아 그녀의 평소 기상 시간이었고, 활동을 준비하는 시간이었겠지만 이상하게도 그녀는 잠에 깊게 빠져 일어나기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시 조심스럽게 그녀를 깨워보자 그녀는 벌떡 일어나- 눈을 감은 채 앉아있었다. 부스스해진 머리를 한 번 긁적이더니 "으음- 다시 잘래요-"라며 다시 누워버리고 말았다. 다시 잠들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벌떡 일어나 나를 한번 빤히 바라보더니 "어...어...?"라며 자신도 당황했는지 가만히 있던 손이 방황하기 시작했다.


"어제 스티브도 무척 피곤한 거 같았고 곤히 잠든 거 같길래 안 깨웠어요-!"


무슨일이 있었냐고 질문하기도 전에 발그레해진 볼, 그리고 멈출 줄 모르는 방황하는 손이었다. "아-"라는 짧은 말을 내뱉자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들을 양손에 잡고 얼굴을 감싸기에 급급한 그녀였다.


"괜찮네. 오랜만에 푹 잠들었던 거 같으니."


나의 말에 눈이 보일 정도로 살짝 열어 보이고는 "정말요?"라는 짧은 질문을 던져오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정돈 안 된 머리카락을 잡고 필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려고 애를 쓰는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 한쪽 손을 잡자 스르륵- 다른 쪽의 손도 놓으면서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정리해줄래요? 아침마다 머리가 항상 이래서... 빗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헤헤- 그녀만의 특유의 웃음소리가 말끝을 어색하게 마무리한다. "그래."라고 그녀의 요청에 수락하자 어색하던 표정이 지워지고 자연스러운 그녀만의 미소가 얼굴에 맴돌기 시작한다. 침대에서 벗어나 빗을 찾기 시작하던 그녀는 무언가가 생각이 났는지 머리를 얼추 정리하고 나에게로 다시 다가와 손을 잡았다.


"인사를 잊고 있었네요. 잘 잤어요 스티브?"

이팔 : 거리감

드림 평일 전력 DOLCE 10회 주제 : 거리감



오랜만의 방문이었다. 평소의 일이 바쁘다 보니 서로 만날 시간도 없을뿐더러 스티브가 임무로 바빠 나가 있는 날이 많았기에 더더욱 만날 기회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오늘, 그가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고 하던 일을 급하게 마무리 지은 뒤, 쉴드로 걸음을 옮겼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아는 사람들이 "드디어 오늘 만나는구나?"라는 반가운 인사를 건네왔고 나는 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들의 말에 대해 대답을 하고 그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도착하려면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 이거라도 마시면서 기다려요."


마실것을 건네오며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는 말에 알겠다며 끄덕여 보인 뒤, 그가 항상 돌아올 때마다 들어오는 입구 근처에 자리를 잡고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그의 모습은 옷깃하나 보이지 않았고, 내가 본 사람들은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뿐이었다. 평소 임무 중엔 방해를 하지 않기 위해 연락을 서로 하지 않았던 터라 연락을 하기엔 조금 꺼려졌다. 심지어 돌아온다는 연락을 스티브 본인에게 직접 들은 것이 아니었기에 더더욱 망설여졌다.


"현화.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음료가 담겨있던 컵을 옆에 내려놓고 휴대전화기를 만지작만지작 꺼리고 있을 즘- 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시선을 옮기자 같이 임무를 나갔다 돌아온 동료와 함께 들어오고 있는 스티브가 보였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뒤에 따라오던 동료는 당황한 눈치였고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은 뒤 "먼저 가 있겠습니다."라고 한 뒤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스티브에게 다가가자 마치 올 거라는걸 몰랐다는 듯이 무척이나 당황한 눈빛이었다.


"항상 임무를 나갔다 돌아올 때면 연락 줬는데 왜 오늘은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한 거에요?"


'보고 싶었어요.'라는 말보다 먼저 나온 그 말. 제일 궁금했던 질문을 먼저 던져보았다. '미안해.'라는 말을 기대했지만, 그 말은 끝내 들리지 않았고 내 시선을 피하기 바쁜 스티브였다.


"항상 나갈 때마다 연락 줬잖아요. 그리고 이번은... 이번은 서로 바빠 만날 기회도 없었고요."

"그랬지. 그래서 연락을 할려 했는데-"

"임무 중에 연락이 안 되는 것도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왜 저만 항상 기다려야 되는 거에요?"


이기적인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평소 스티브의 행동이라던가 무조건 기다리는 처지가 되어버린 나로서는 그날 따라 무척이나 지쳐있었고 그동안 쌓인 것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듯했다. 갑자기 터져버린 화 때문에 스티브도 당황했는지 손을 뻗어 달래주려고 하는듯했지만 뻗어오는 손을 밀면서 거부하자 멈칫하더니 천천히 내리면서 "미안하네."라며 작은 사과를 해왔다.


"왜- 왜 나만 기다려야 하는 거에요? 저는 스티브에게 비밀 없이 알려 줬잖아요. 임무에 대한 건 비밀 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걸 알고 있으니까 묻지 않잖아요. 하지만 다른 것만큼은 비밀 없이 말해줄 수 있잖아요."


참지못하고 그동안 쌓아온 것들을 터뜨렸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 나의 외침만이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기분을 가라앉혀야 해- 라며 속으로 계속 되새겼지만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가만히 내 말을 듣고 있던 스티브는 내 손에 자신의 손을 올린 뒤 약한 깍지를 잡고서 자신의 품으로 나를 당겼다. 벗어날까 했지만 내 힘으로는 그의 힘을 풀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잠자코 있었다.


"미안해."


다시 귀 주변에 그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진다. 왜 스티브는 자신의 비밀을 감추려 드는 걸까, 왜 나에게 설명을 해주려고 하지 않는 걸까- 스티브가 이렇게 행동을 할 때마다, 가깝다고 생각하던 그가 무척이나 멀리 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무척이나 많다.

이칠 : 이름을 부르기 전에

드림 평일 전력 ; DOLCE 6회 주제 :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인질을 구하고 싶으면 우리가 요구하는 것들을 준비해!!"


저 인질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거슬린다. 나 혼자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든지 빠져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 옆에서 총구를 겨누고 있는 사람들이라던가 내 뒤에 잡혀있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여기서 벗어난다면 화살이 저 사람들한테로 돌아갈 게 뻔했기에 잠자코 저 사람들이 어떻게 나오는지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통화하던 저 사람-대장으로 보이는 그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던져버리고는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 아마 협상이 자기 생각과 다르게 흘러가버린걸 지도 모르겠다.


"이봐. 너 쉴드에 대한 정보만 넘기면 너랑 저 인질들 무사히 풀어줄 테니 넘겨."

"무슨 정보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저는 협력자라는 조건에 있기에 정보의 '정'자도 듣지 못했는걸요."


물론 거짓말이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가 들은 정보들을 넘겼다간 쉴드에 커다란 타격을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면. 기다리게. 금방 갈 테니."머릿속에 그가 종종 하던 말이 떠오른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의 말대로 기다리는 방법뿐이었다. 그가 조금 더 빨리 와서 구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대한 시간을 끄는 방법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시간을 끌려고 하는 거라면 소용없어. 캡틴의 연인 씨."


아- 이 사람의 말 한마디에 머릿속이 순간적으로 백지장이 되어버렸다. 순간적으로 내 표정이 멍해지자 "빙고-"라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 그 사람이었다. 나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는 부하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직접 든 뒤, 나에게로 다시 총구를 겨누었다.


"아가씨. 이래 보여도 기본적인 건 다 조사하고 하는 거라고. 어때, 이제 정보를 넘길 마음이 생겼어?"

"스..."


스티브- 그의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이름과 같이 절실한 그 단어가 있기에 그의 이름을 조그맣게 부르려던 순간 눈앞에 익숙한 방패가 날아들어 왔다. 재빠르게 날아온 방패는 내 앞에 있던 총을 쳐낸 뒤, 날아온 방향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주변의 있는 그 사람과 부하들은 당황했는지 뭐야-! 라는 말만 연신 내뱉으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당황했는지 "무슨 일이야?" "구하러 온 건가?" 라는 말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하! 드디어 그 유명한 캡틴 아메리카 님이 오신 건가?"


그사람은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주변을 이곳저곳 둘러보면서 "뭐하시나? 나오지 않으시고?" 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면서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 건 아마 나 때문인 걸까-? 어두운 주위 때문에 어디에 얼마만큼 있는지 감은 오지 않았지만 이 사람들에게서 내가 멀어지면 이 상황은 순식간에 끝날 거라는걸 잘 알고 있었다.


"어이 너!!"


최대한 그가 있을 거 같은 방향으로, 아까 방패가 날아왔던 방향으로 몸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지만 철컥-하고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그사람이 총을 쏘는 소리가 뒤이어 같이 들려왔다. 맞는다- 그의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이상하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맞는다- 맞는다? 이상하게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 뒤를 돌아보는 그렇게나 보고 싶었던 그의 등이 보였다.

내가 그곳에서 벗어나자마자 예상한 데로 상황은 빠르게 해결되었다. 같이 잡혀있던 사람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고, 그 소동을 벌인 그 사람들도 전부 잡혀 한순간에 정리되어가고 있었다. 몸에는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 잠시 앉아 쉬고 있을 때 저 멀리서 달려오는 그가 보였다.


"다친 곳은-"

"없어요. 괜찮데요."

"많이 걱정했네."


손에 들고 있던 헬멧을 내 옆에 놓고는 나를 꽉- 껴안아오는 그였다. 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불안해했을 그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기에 조용히 그의 등에 손을 올려 안아주었다.


"괜찮아요. 이름을 부르기 전에 와주었으니까요."

이육 : 우연이라기엔 운명과도 같은

드림 글 전력 35회 주제 : 우연이라기엔 운명과도 같은



일을 끝내고 휴식 겸 근처 바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뒤 주문을 하고 나온 술을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어차피 이런 몸이라면 취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분위기라도 내고 싶다는 아주 작은 욕심 때문에 종종 이곳에 와서 마시곤 한다. 이곳에서 마시다 보면 옛날 일도 종종 기억나기도 하면서, 지금의 일을 조금이라도 잊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을 무렵,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소녀-라기에는 이곳에 들어올 나이가 안되어 보이지만-가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표정으로 봐서는 아마 저 남자가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짜증 섞인 소녀-그녀의 말에 인상이 확 구겨지던 그 남자는 욕설을 내뱉고는 다시 끌어내려고 하자 아까의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 대신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에요? 이거 안 놔요?!"라며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내뱉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당신이 뭔데 자꾸 저한테 참견인 거에요?"

"뭐?!"


점점 상황이 악화하여진다. 이대로 가면 그녀가 큰일 날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방의 손을 낚아챘다. 갑자기 자신의 손이 잡히자 놀랐는지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당신은 또 뭐야?!"라며 신경질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 사람의 여자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그만하시죠."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지 모르던 그때 무의식적으로 저 말이 튀어나왔다. 내 얼굴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신경질적으로 손을 빼고는 홱- 돌려 신경질적으로 의자 하나를 걷어차고는 이 바를 나가는 그였다. 심호흡하며 안정을 찾아가던 그녀는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내 쪽을 보면서 "고맙습니다."라며 푹 숙이면서 인사를 하던 그녀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 몰랐지만 갈색 빛이 맴도는 머리칼과 바의 불빛 때문일지 몰라도 회색빛으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몽환적으로 보였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짧은 대답을 하고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황급히 그 바를 빠져나왔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이곳은 아무리 와도 적응이 안 된다. 넓은 매장들 탓인지 몰라도 어디로 가야 뭐가 나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곳에서 길만 잃지 않는다면 정말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매장을 둘러보면서 필요한 것들은 눈여겨보면서 쇼핑을 하다 지나가던 한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내가 넘어지기 전에 그 남자는 내 손을 잡아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모자를 푹- 눌러썼기에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아니요. 제가 잘 보지 못했던 탓도 있으니깐요."라며 짧은 인사를 하더니 다시 자신의 갈 길을 가는 그였다. 넘어질 뻔 하면서 흐트러진 옷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갈려던 찰나 발밑에 무언가가 밟혀 확인하자 아마 아까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갑이 내 발밑에 놓여 있었다. 몸을 돌려 저 멀리 사라지는 그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가 옷 끝을 잡자 깜짝 놀랐는지 뒤를 홱- 하고 돌아보는 그였다.


"저기-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아. 네-"


지갑을 건네주다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실수로 지갑을 떨어뜨리고 서로의 손을 잡아버렸다. 그는 당황했는지 급하게 손을 빼고 몸을 숙여 자신의 지갑을 주워들었다. "아-" 라고 내가 짧은 말을 내뱉자 "제 실수인걸요."라는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지갑을 챙겨 든 그는 다시 짧은 인사를 하고 자신이 향해야 하는 곳으로 다시 걸어갔다. 모자 때문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미소를 짓고 있던 거 같았다.


***


최근들어 그녀를 자주 보는듯했다. 우연이라기에는 무언가가 있는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접어두고서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날 따라 무슨 기분이 뜬 걸까- 평소 가던 곳과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에 온 지 몇 분이 흘렀을 무렵 저 앞에서 익숙한 머리카락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신반의로 속도를 조금 올려 그녀를 지나치면서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얼굴, 그 누구보다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다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그녀와 계속해서 만나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오 : 하고 싶은 말

드림 전력 주제 : 하고 싶은 말



당신이 내 눈앞에 보이지 않은 것도 벌써 며칠, 몇 달을 넘어가고 있다. 집으로 찾아가도 보이지 않았고 연락을 해도 없는 번호라며 연락이 되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 수소문을 해보아도 행적을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었다. 심지어 오랜 시간을 보내온 친구조차 당신의 행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적어도 당신만큼은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 그 어떤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아직도 찾지 못한 거야?"

"그래. 어디로 가버린 것인지 전혀 알 수가 없어."


걱정스럽다는듯이 물어오는 나타샤를 한 번 보고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출국한 흔적도 없었고 주변 CCTV를 전부 다 보아도 당신-너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말 못할 일이라고 해도 "아주 잠깐 저 혼자서 보내고 싶어요."라던가 "고향에 다녀올게요. 잘 지내고 있을 수 있죠?"라는 말을 남기고 항상 사라졌기에, 그곳으로 가도 잘 지내고 있다는 문자라도 남겨줬기에 안심하고 지내고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무엇 때문에 마치 없었던 존재였던 것처럼 사라져있었다.


"어디로 가버린 거지..."


오늘도 아무도 없는, 그나마 사진이라던가 사용했던 물건들이 남아있는 너의 집에서 망하니 둘러보았다. 같이 지냈던 순간들, 아니면 친구와 같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사진 등 많은 사진이 방에 놓여있었다. 옷장에는 옷 몇 벌만 남아있을 뿐 다른 물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 안에도 마치 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었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듯이 각종 음식재료와 바로 꺼내먹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음식 몇 개가 들어있었다. 이렇게 집안에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는데 너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그래도 서로 같이 찍은 사진 하나쯤은 있으면 좋다는 말과 함께 얼떨결에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탁자 위에 놓여있는 그 사진을 집어들어 너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아직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그걸 전할 방법이 없다.


"무척이나 보고 싶어, 나의 그대. 어디 있는지, 무사히 있는지 알고 싶어."



*     *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자는 사이 누군가 자꾸 내 몸을 건드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눈을 떠보니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와있었다.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방안. 그리고 아마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만 묶어놓은 사슬들, 내 앞에 놓여있는 음식.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이 이게 전부였다. 잠이 들고 일어나면 음식의 종류만 바뀌어 있을뿐 사람을 전혀 보지 못했다. 바뀐 음식의 종류가 10가지를 넘어갈 때쯤 열리지 않던 문이 열리고 드디어 사람-납치범으로 보이는 자를 보았다. 알 수 없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잡으며 무언가를 내뱉는 그였다.


"이봐, 드디어 그쪽에서 당신이 사라진 이유를 알아냈더라고. 납치범이 누군지까지 말이야. 아, 물론 나고-"


크흐흐- 알 수 없는 웃음을 내뱉는 그였다. 어떻게든 이곳을 벗어나 빨리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단단히 묶인 사슬-수갑은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나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는 웃음을 멈추고 입을 열어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벗어나고 싶지? 하루빨리 연인의 곁으로 가고 싶지?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야.

네가 그곳, 쉴드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넘겨주면 아주 쉽게 풀려날 거야."


자- 어서 정보를 말해. 라는 그의 말을 무시했다. 그의 소중한 곳을 넘길 바에야 여기 남아있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질문에 반박했다.


"꿈 깨요. 소중한 사람의 장소를 직접 내 손으로 넘길바에 여기 남아있는 게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 그럼 하고 싶은 말은? 그에게 전해주지."

"충고하나 해주죠. 스티브, 캡틴 아메리카가 저를 구하러 올 거에요. 당신이 안전해지고 싶다면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는 게 좋을걸요?"

이사 : 애정표현

드림 글 전력 : 애정표현



1.

임무에 대해 회의를 하다 유리창 너머로 어디론가 이동 중인 너의 모습이 보였다. 너도 나를 봤는지 작은 크기의 손 하트를 만들어 보이고는 가던 발걸음을 마저 옮기며 유유히 사라지는 너였다. 내 얼굴을 본 나타샤가 "왜요. 또 현화 봤어요? 얼굴이 새빨간데?" 라며 말을 하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약 올리듯 말하기 시작했다. 저런 갑작스러운 애정표현만큼은 무척이나 약하면서도 종종 기분이 좋아진다.


2.

건물 안을 배회하던 도중 우연히 훈련 중인 곳으로 나와버렸다. 다시 되돌아갈까- 했지만, 열심히 노력하며 훈련 중인 그의 모습이 보였기에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쉬는 시간이 됐는지 하나둘씩 자유롭게 움직이길래 밑으로 내려가 그를 찾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둘러보지만 보이지 않아 돌아가려는 찰나 어느새 뒤에 다가와 나를 꽉 껴안는 그였다. "캡틴은 따로 회복제 필요 없겠네-"라는 동료의 말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버렸다.


3.

항상 일반적인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여러 가지를 보고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늘 평범한 헤어짐이었기에 오늘만큼은 다르게 표현해보자- 라는 마음을 먹고 집 앞까지 바래다주고 갈려는 그를 붙잡고 짧게 키스를 했다.


"잘 가요 스티브."


당황했는지 아니면 이런 표현 할거라는걸 예상하지 못했는지 미동 없이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서 있는 그에게 다시 짧은 인사를 해주고는 집으로 돌아갔다. 아아- 역시 이런 애정표현은 역시 두근거려-


4.

종종 이런 애정표현을 네가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나도 너에게 애정표현을 끊임없이 쏟아주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이삼 : 다음 생에도 널사랑할게
드림 전력 주제 : 다음 생에도 널 사랑할게


요 며칠 동안 멍하니 어딘가를 바라보던 너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평소와 다르게 밝게 빛나던 회색 눈동자는 유난히 탁해 보였고 혼잣말이 늘어났다. 누군가와 이야기하듯 뭐라고 중얼거리는듯하더니 어떨 때에는 비어있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치며 화를 내다가 지쳤는지 한숨을 푹 쉬며 주저앉아 뭐라 다시 웅얼거리다 다시 울기 시작한다. 왜 그런 행동을 보였는지 그때까지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보이는 건 그동안의 행동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약품냄새, 바쁘게 움직이는 의료진들의 목소리 그리고 내 앞에 보이는 너였다. 손목에 흐르는 피, 목을 심하게 긁었는지 살점이 뜯겨있고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쁘게 숨을 들이쉬고 있었다.

"현화, 현화."
"흐윽...흐아...."

손을 잡은 손이 있는 힘껏 쥐어짜 내는 듯이 꽉 잡았다. 기계가 위험함을 알리는지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그 소리를 듣고 바쁘게 의료진들이 몰려들었다. 아직도 붙잡은 너의 손은 무척이나 따뜻하게 느껴졌다. 피범벅이 되어있는 다른 쪽 손을 들어 가까이 다가오라는 듯한 손짓을 한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미안해요... 다음번에는 다음 생에도 당신을 사랑하면 좋겠어요..."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너는 손을 놓아버렸고 끝을 알리는 기계 소리만이 이곳에 남아있었다.

***

아주 머지않은 미래였다. 금발의 머리를 한 청년은 숨 가쁘게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고 뒤를 바짝 쫓은 괴인들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그 청년을 잡기 위해 같이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그 청년이 막다른 골목에 도착하자 그 괴인들은 잘되었다는 듯이 알 수없는 웃음소리를 내고 그 청년에게 다가갔지만 이내 날카로운 칼날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괜찮아요? 다친 곳은 없죠?"

기다랗고 갈색의 양 갈래 머리를 한 소녀는 칼집에 칼을 넣고 청년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청년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그 소녀의 손을 잡고 골목 밖으로 나왔다.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저 멀리서 달려오는 무리를 발견했는지 표정이 구겨지고는 "달리기 잘해요?"라며 청년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끄덕인 청년을 보며 환한 미소를 지은 소녀는 "그럼 달려요. 빨리."라며 엄청난 속도로 그 괴인들일 피해 청년과 같이 달렸고 숨을 곳을 발견한 소녀는 뒤따라오던 청년의 손을 잡고 재빨리 몸을 숨겼다.

"달리기 잘하네요."
"뭐. 군인이다 보니 매일 운동하고 있죠."
"정말요? 아무튼, 어서 안전한 곳으로 도망가세요. 여긴 제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깐요."

멀어져간 괴인을 잡기 위해 칼을 집어들며 일어난 소녀의 손목을 잡은 청년을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소녀였다. 무언가를 고민하는듯하더니 이내 입을 때고 질문하고 싶었던 것을 질문하는 청년이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구해주셨는데 이름 정도는 알아야죠."
"현화에요."
"저는 스티브 로저스. 스티브라고 불러주시면 돼요."


이름을 들은 소녀는 "그럼 나중에 봐요."라는 말을 남기고 괴인을 쫓아 멀리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소녀를 바라보면서 청년은 빠르게 달릴 때보다 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