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 : 우연이라기엔 운명과도 같은

드림 글 전력 35회 주제 : 우연이라기엔 운명과도 같은



일을 끝내고 휴식 겸 근처 바에 들어가 자리를 잡은 뒤 주문을 하고 나온 술을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어차피 이런 몸이라면 취하지도 않지만 그래도 분위기라도 내고 싶다는 아주 작은 욕심 때문에 종종 이곳에 와서 마시곤 한다. 이곳에서 마시다 보면 옛날 일도 종종 기억나기도 하면서, 지금의 일을 조금이라도 잊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


분위기를 타기 시작했을 무렵,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있던 소녀-라기에는 이곳에 들어올 나이가 안되어 보이지만-가 자신의 팔을 잡아끄는 남자의 손을 뿌리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표정으로 봐서는 아마 저 남자가 강제로 끌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짜증 섞인 소녀-그녀의 말에 인상이 확 구겨지던 그 남자는 욕설을 내뱉고는 다시 끌어내려고 하자 아까의 알아들을 수 없는 그 말 대신 "당신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에요? 이거 안 놔요?!"라며 확실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내뱉으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당신이 뭔데 자꾸 저한테 참견인 거에요?"

"뭐?!"


점점 상황이 악화하여진다. 이대로 가면 그녀가 큰일 날 것만 같아 자리에서 일어나 상대방의 손을 낚아챘다. 갑자기 자신의 손이 잡히자 놀랐는지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당신은 또 뭐야?!"라며 신경질적인 말을 내뱉었다.


"이 사람의 여자친구 되는 사람입니다. 그만하시죠."


뭐라고 대답을 해야 될지 모르던 그때 무의식적으로 저 말이 튀어나왔다. 내 얼굴과 그녀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신경질적으로 손을 빼고는 홱- 돌려 신경질적으로 의자 하나를 걷어차고는 이 바를 나가는 그였다. 심호흡하며 안정을 찾아가던 그녀는 상황파악이 되었는지 내 쪽을 보면서 "고맙습니다."라며 푹 숙이면서 인사를 하던 그녀였다. 멀리서 보았을 때 몰랐지만 갈색 빛이 맴도는 머리칼과 바의 불빛 때문일지 몰라도 회색빛으로 보이는 그녀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몽환적으로 보였다.


"아닙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짧은 대답을 하고 그녀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황급히 그 바를 빠져나왔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


이곳은 아무리 와도 적응이 안 된다. 넓은 매장들 탓인지 몰라도 어디로 가야 뭐가 나오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곳에서 길만 잃지 않는다면 정말 다행일지도 모른다. 이리저리 매장을 둘러보면서 필요한 것들은 눈여겨보면서 쇼핑을 하다 지나가던 한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내가 넘어지기 전에 그 남자는 내 손을 잡아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모자를 푹- 눌러썼기에 얼굴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지만,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아니요. 제가 잘 보지 못했던 탓도 있으니깐요."라며 짧은 인사를 하더니 다시 자신의 갈 길을 가는 그였다. 넘어질 뻔 하면서 흐트러진 옷무새를 정리하고 다시 내 갈 길을 갈려던 찰나 발밑에 무언가가 밟혀 확인하자 아마 아까 그의 것으로 추정되는 지갑이 내 발밑에 놓여 있었다. 몸을 돌려 저 멀리 사라지는 그를 향해 재빠르게 달려가 옷 끝을 잡자 깜짝 놀랐는지 뒤를 홱- 하고 돌아보는 그였다.


"저기-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아. 네-"


지갑을 건네주다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실수로 지갑을 떨어뜨리고 서로의 손을 잡아버렸다. 그는 당황했는지 급하게 손을 빼고 몸을 숙여 자신의 지갑을 주워들었다. "아-" 라고 내가 짧은 말을 내뱉자 "제 실수인걸요."라는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지갑을 챙겨 든 그는 다시 짧은 인사를 하고 자신이 향해야 하는 곳으로 다시 걸어갔다. 모자 때문에 그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미소를 짓고 있던 거 같았다.


***


최근들어 그녀를 자주 보는듯했다. 우연이라기에는 무언가가 있는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그 느낌을 접어두고서 운동을 위해 집을 나섰다. 그날 따라 무슨 기분이 뜬 걸까- 평소 가던 곳과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에 온 지 몇 분이 흘렀을 무렵 저 앞에서 익숙한 머리카락색이 보이기 시작한다. 반신반의로 속도를 조금 올려 그녀를 지나치면서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익숙한 얼굴, 그 누구보다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니 나도 모르게 다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아마 그녀와 계속해서 만나는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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