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평일 전력 DOLCE 제 40회 주제 : 가깝고도 먼 사이



침대에 누워 책을 읽던 남자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쓰러진 자신을 구해준 그녀를, 인간이 어딜 감히 아스가르드인을 막대하냐고 소리쳤을 때 "그래서 어쩌라는 거죠?" 라며 덤덤한 얼굴로 오히려 욕설을 내뱉던 그녀를 머릿속에 떠올린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지워버리지만, 다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바람에 작게 욕설을 내뱉는다.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지만, 평소라면 텔레비전 소리로 시끄러울 거실이 조용함에 잠겨있었다. 식탁 위로 시선을 돌리자 무언가로 덮여있는 접시와 노란 포스트잇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잠들어 있는 거 같아서 깨우지 않았어요. 간단한 식사거리 만들어 놓고 가니까 일어나면 먹어요.'


그녀의 글씨였다. 애초에 이 작은 집에 살던 사람은 그녀밖에 없었으니까. 덮개-뚜껑을 열어보자 정갈하게 놓인 샌드위치와 과일 몇 가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외출하는 날은 두 가지로 오후에 집을 나서는 날과 오전에 집을 나서는 날로 나누어진다. 오후에 집을 나서는 날은 그녀의 직장에 출근하는 날이지만 오전, 오늘 같은 날은 아무리 물어보아도 "사생활이니까 묻지 마요."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접시 위에 올려진 샌드위치를 하나 집어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감자, 양파- 그녀가 좋아하는 재료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맛있군."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의 음식들, 특히 그녀가 만들어주는 음식들은 입맛에 무척이나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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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걸 다 해놓은 거에요?"


늦은시간 그녀가 돌아왔다. 평소와 다르게 굽이 있는 신발을 신고 나갔는지 바닥에 뒹구는 신발의 소리가 요란하다. 오자마자 부엌으로 향한 그녀는 깔끔하게 씻겨진 식기들을 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그야 이곳에 같이 살아가는 처지라면 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무덤덤한 말을 들은 그녀는 이내 그에게로 다가와 "잘했어요." 라며 아무렇지 않게 머리를 쓰다듬고는 씻으러 가보겠다며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소파에 걸터앉아 멍하니 있다가 그녀의 손길이 닿은 머리부분을 조심스럽게 만져본다. 스킨십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못된 스킨십은 서로의 싸움을 불러오기에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해도 괜찮을지도 모른다고, 자연스럽게 행하는 그녀의 신체접촉도 어쩌면 서로의 사이가 가까워진걸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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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관한 이야기들은 서류상으로도, 여러 사람의 말로도 몇 번이고 들은 적이 있다.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 토르의 동생, 위험인물 등 지겨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다가 그가 우리 집 주변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는지 이곳에 돌아온 것인지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돌봐주고 주변인들 모르게 돌려보내자고 다짐을 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이 집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해져 있었다. 아니 익숙하게 느껴졌던걸 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이 무서웠던 걸까. 호크아이에게 들었던 이야기? 스티브에게 들었던 이야기? 서류상으로 남아있는 그의 만행들? 아니면 알게 모르게 돌변할지도 모르는 그의 행동들? 아직도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난 짐작할 수 없다.


"수고했어."


그는 나를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항상 귀가할 때마다 건네는 저 말이 한집에 같이 살면서 친한 사람에게 건네는 저 말이 언제 바뀔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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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면 멈칫하는 경우가 종종 눈에 들어온다. 행동도, 눈동자도 멈춰버린 체 내 시선을 피하기 일쑤다. 그녀의 그런 행동도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다. 형의 친구들을 만나고 있는 건지는 모르지만 뉴스나 여러 가지 매체로 나에 관한 이야기를 몇번 접했다면 저런 행동들을 보이는 것에 대한 충분한 이유였다.


"이만 쉴게요. 잘 자요."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방에 먼저 들어가는 것은 나다.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 조금 더 편안하게 휴식을 만끽할 수 있겠지. 아하- 짙은 한숨이 입 밖으로 나온다. 어느 정도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던걸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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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게 대해야지, 편안하게 대해야지. 몇 번이고 이 말을 가슴속에서 되뇐다. 그가 돌아가거나, 다른 곳에서 지내지 않는 이상 이 집에서 같이 살아가는 이상 그와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하지만 "그는 위험인물이야."라는  말들이 떠오르면서 정신을 어지럽게 만든다. 종종 나도 모르게 실언을 해버리면 그의 표정이 굳어버리는 게 눈에 들어오고 '아 큰일 났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려는 게 아녔다?


"....먼저 들어가지."


지끈거리는지 머리를 감싸 쥐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나와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방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하고 닫아버린다. 아무도 없는 거실엔 아직도 문이 닫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하아- 쓰러지듯이 소파 위에 앉는다. 계속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일이 반복될 때마다 그에게 보이는 내 행동들에 대해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와의 관계진전에 힘을 써보려고 하지만 여전히 안 보이는 장애물들이 그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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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관계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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