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피해 관련 보고서야."

 

부탁했던 자료를 툭- 하고 무심하게 던지고는 "왜 이런 거를 찾아보려는 거지. 너와 관련된 일이 아니잖아."라는 짧은 말을 덧붙이고는 그 사람은 사라진다. 무슨 상관이냐는 말을 할까 했지만 덧붙여봐야 서로 좋을 것이 없다는 걸 알고 있기에 무시하고 파일을 열에 보고서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뉴욕의 테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가득 실려있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진 건물, 폐허 같다고 느껴질 정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심에서 서로의 가족, 친구 등을 찾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저번 회의에서도 들었듯이 아마 복구되려면 오래 걸리겠지-라는 생각으로 다음 장으로 넘기자 이 일을 벌인 사람으로 추정되는,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특히 리더로 추정되는 사람은 더더욱 말이다.

 

미국의 영웅, 전쟁을 끝낸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는 얼음 안에서 깨어난 이후에도 영웅의 편에 서서 정의를 위해 싸웠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고 그것만큼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은 사건-내가 알지 못하는 사건-에 의해 그는 정의의 편이 아닌 악당, 빌련 들의 편에 서서 활동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다들 그를 더는 쉴드의 일원이 아닌 하이드라의 일원으로 생각하고 적대시하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를 이곳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했던 작전들을 전부 다 찾아보고, 빌런이 되어버린 후의 행적들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아직도 그에 대해 알아보는 중이야?"

"네. 적어도 원래대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하고요."

"...그에 관해 조사를 하는 건 모두 알고 있고 말릴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

 

모두 나에게 미친 짓을 그만두라고 말을 할 때 뒤에서 챙겨주고 걱정해주었던 나타샤였고 저 말의 뜻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나였기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요즘 하이드라 쪽에서의 움직임도 수상쩍기에 더욱이 조심하라는 말에 괜찮다며,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며 나타샤를 안심시키고 난 후 도심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해복구 중인 그곳은 서류에서 보았던 사진보다 상당히 괜찮아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도로 위 가득 쌓여있던 건물 잔해들은 듬성듬성 보일 뿐 정리가 되어있었고 곳곳의 안전지대인 곳에서는 사람들이 치료를 받고, 휴식을 취하며 이곳이 원래의 모습을 하루빨리 되찾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도... 없구나..."

 

이곳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어쩌면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익숙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재빠르게 도망가는 것을 발견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그를 쫓아 달려가자 막다른 길이 나왔고 잘못 본 걸지도 몰라 돌아가려고 뒤를 돈 순간 내가 그렇게 찾고 싶었던 그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오랜만이군."

 

옷도 예전에 봐오던 옷이 아니다. 그에게 풍겨오던 냄새는 땀과 노력이라고 느껴지는 냄새가 풍겨왔다면 지금은 피 냄새만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거라고는 체온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꽉 껴안아오는 그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그렇게 애를 쓰면 쓸수록 그는 더욱 힘을 주어 나를 껴안았다. 결국, 그를 뿌리치고 품에서 벗어나 그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제가 당신의 흔적을 따라 당신을 찾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만날 줄 몰랐네요."

"내가 내 연인을 만나러 오는 게 잘못 된 건가."

 

연인- 아직도 우리의 관계를 옭아매고 있는 단어. 예전에는 이 단어가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은 평범했던 우리의 관계가 그 일이 있는 후에는 '특별한'관계로 만들어 버렸기에 듣기 싫어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내 얼굴을 붙잡은 뒤 천천히 쓸어내리는 스티브의 손길이 느껴지자 온몸에 소름이 쫙- 끼친다. 분명 평소에도 하던 행동이지만 예전과 다른 느낌이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동물의 느낌 같았다. 턱 끝에 닿은 손을 피해 고개를 확 돌린 뒤 살짝 뒤로 물러나자 "이런 반응은 예상했지만 직접 당하니 기분이 묘한걸."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연인이라니 소름이 끼치도록 듣기 좋은 말이네요. 그래서 무슨 일이죠. 그동안 사건을 일으키고 자취를 항상 감춰왔잖아요."

"글쎄. 이번만큼은 직접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서."

 

도망가듯 뒤로 물러서면 점점 내 앞으로 다가오는 스티브. 어느새 등 뒤에는 골목의 끝이 닿아 있었고 어디로 도망가지 못한 채 내 앞을 가로막은 스티브의 얼굴을 빤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 비켜 주다는 내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 와중에도 오랜만에 만난 연인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멍청한 심장은 아주 빠른 속도로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관계로 얽혀버려서 미안하단 말을 하려고 왔네."

 

어떤 말을 할까- 수십 가지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입 밖에 나온 말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다.

 

"이미 이 도시를 구하는 영웅이 되어있더군."

"전 제가 선택한 길을 가는것 뿐이에요."

 

나의 대답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스티브였다. 왜, 어째서?

 

"영웅이 되었으니 선택을 하는데 힘이 들지도 모르겠군... 나와 같이 가지 않겠나?"

 

손을 뻗어 마치 '내 손을 잡아줘'라고 아우성치는듯한 모습이었다. 잡아주기를 기다리는 손을 쳐내면서 의사표시를 내보이자 "역시 그럴 것 같았네."라며 손을 거둬들이는 스티브였다. 골목의 입구를 한번 바라보더니 등을 돌려 입구를 향해 걸어가다 멈칫하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면 아마 손을 잡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네. 다음에 다시 만나러 올게. 나의 연인."

 

그 이상의 말은 더 하지 않고 유유히 사라지는 스티브였다. 사라지자마자 온몸의 힘이 쫙 풀리면서 주르륵- 주저앉고 말았다. 이 관계를 끝내려면 서로의 감정을 정리하는 것이 좋다. 나도 알고 스티브도 알고 있는 해결방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몰라도 서로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서로 자신의 편으로 만들 방법만, 돌려놓을 방법만 고집하고 있다.

 

아마 서로의 고집을 꺾지 못하면, 한쪽이 포기하지 못하면 이 특별한 관계는 계속 이어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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