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 쉿

드림 전력 주제 : 쉿


터벅터벅 쉴드의 긴 복도를 걸어갔다. 그렇게 이른 시간도 늦은 시간도 아니지만 유난히 오늘따라 조용하게 느껴졌다. 휴대폰을 보니 아- 오늘 임무가 있다고 했지. 그래서 무척 조용했던 거구나- 조용했던 이유를 깨닫고 바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도 보기는 힘들겠구나. 안 그래도 평소에도 업무가 달라 보기 힘든데- 조용히 혼잣말을 하고 의자에 앉아 할 일을 시작했다.

 

“무사히 끝내면 좋을 텐데.”

 

임무를 나갈 때 마다 멀쩡하게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지만 가끔 다쳐 올 때도 있어 내심 걱정이 되곤 했다. 아아- 오늘도 다치지 않고 돌아오게 해주세요. 라며 조용히 마음속으로 빌었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걸까-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온다.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빠르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가니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무리들이었다. 그곳에는 스티브도 있었다.

 

“스티브 괜찮아요?”

“아- 응. 괜찮아. 걱정 많이 했구나.”

“당연한 걸 늘 물어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 라며 작게 이마에다 키스를 해주는 스티브였다. 그리고 뒤를 한번 보더니 “들어가서 쉬도록. 결과에 대해서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지.”라며 내 손을 잡고 내 방으로 걸어갔다. 슈트는요? 라는 내 질문에 조금 있다가 벗어도 괜찮아 라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더니 날 꽉 껴안으며 “보고 싶었어.”라고 말을 하는 스티브에게 “저도요.”라며 화답을 했다.

 

“보통 임무 끝내고 오자마자 바로 결과에 대해 얘기하잖아요. 안 해도 괜찮아요?”

“괜찮아. 걱정 안 해도 돼.”

“그래도……”

 

내심 걱정이 되었다. 늘 항상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이었기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평소와 다른 행동이었기에 괜찮은 거냐고 거듭 질문을 했다. 가만히 내 말을 듣더니 손가락을 내 입술에 가져다대고는

 

“쉿- 괜찮으니까. 이렇게 쉬고 나서 보고해도 안 늦어.”

 

라며 내 무릎을 베고 누워버리는 스티브였다. 아아, 정말- 가끔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조용히 무릎을 베고 누운 스티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삼 : 장미꽃 101송이


"이봐 캡틴. 요즘 만나는 여자는 어떻게 되가?"

그렇게 현화와 만나기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난 거 같았다. 아직 정식적인 그런 건 없었지만, 저녁에 가끔 시간이 나면 서로 이야기를 하거나 간단하게 저녁을 먹는 정도로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건에 대해서 주변인들에게 조언을 구하다 보니 대충 만나는 여자가 있다- 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놀러 온 토니가 궁금했는지 물어보았다.

"잘 만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고백은 했느냐- 그게 궁금한 거지. 설마 그냥 만나는 거 아니야?"

살짝 찔렸다. 계속 만나다 보니 좋아하는 감정은 커졌지만 어떻게 고백을 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만 하고 있던 터였다. 내 표정을 보더니 "역시나." 라고 짧게 말하고는 조언을 해줄 테니 이리 와봐- 라며 나에게 손짓을 했다. 못 미덥지만 그래도 조언이라도 구하는 게 좋을 거 같으니 한 번 이야기를 들어 보도록 했다.

***

스티브와는 종종 약속을 잡아 만남을 이어가고 있었다. 늘 항상 아침에 운동이 끝나면 약속을 잡곤 했는데 오늘따라 "저녁에 연락 따로 할게요."라고 말을 하고는 빠르게 사라졌다. 그리고 바로 전에 "2시간 뒤에 늘 보던 곳에서 봐요."라는 문자가 날라왔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문자의 느낌상 오늘은 무엇이 있을 거라는 것을 여자의 직감으로 느꼈다. 늘 입고 나가던 원피스 말고 작은 꽃무늬들이 수놓아진 하얀색 원피스를 옷장에서 꺼내어 입고 머리 손질을 하고 시계를 보니 약속시각이 다되어가 늘 항상 만나던 곳으로 향했다.
도착한 그곳에는 형형색색의 빛을 빛내며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대만 있을 뿐 사람이라곤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늘 항상 먼저 도착해 날 기다리던 스티브도 보이지 않았다. 시계를 한 번 보고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랑한 명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 터벅터벅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고는 검은색 정장을 차려입은 스티브가 나타났다.

"오늘 무슨 일 있어요? 평소에 입지 않던 정장을 다 입으시고."
"음- 그러니까-"

무언가 고민을 하는듯하더니 빨개진 얼굴로 내 앞에 꽃다발을 내밀었다. 빨간색 장미꽃들이 모여있는 꽃다발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라며 멍하니 그 자리에 서서 꽃다발을 받지도 않고 있자 입을 열고 말을 하는 스티브 씨였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무척이나 좋아했어. 그러니 나랑 연애- 를-"

이 말이 아닌데 라며 당황한 표정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아마 준비한 대사가 생각대로 나오지 않은 거겠지. 그런 모습이 무척 귀엽게 느껴져 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좋아요. 먼저 말해줘서 고마워요-"

활짝 미소를 지어 보이자 한결 표정이 풀리더니 "고마워."라며 나를 커다란 품에 넣어 꽉 안아 주었다.

***

"아니 내가 알려준 대사대로 안 한 거야?"
"그렇게 고리타분한 대사로 외우게 하였으니까 안 한 거겠죠."
"캡틴 시대상으로 맞게 알려줬는데-"
"그런데 상대방은 점잖아요. 여자 쪽에 맞춰야지. 패퍼가 왜 당신을 좋아하는지 정말 모르겠네요."


이 : 첫만남 이후에


"캡틴 오늘 무슨 약속 있어요?"

어느새 나타난 나타샤가 뒤에서 팔짱을 끼고는 나한테 물어보았다. 아침운동 때 지나치기만 했던 그녀에게 요 며칠 전에 통성명을 했다. 패기와 같은 묘한 분위기가 들었지만 패기와 그녀는 다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알 수 없는 느낌이 들어 지나치듯이 인사를 했고 그녀도 나의 인사에 화답하면서 그렇게 아침마다 같이 운동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운동하면서 만나지 말고 저녁에 만나실래요?"

그녀가 먼저 나에게 말을 건넸고, 괜찮다고 화답을 하면서 오늘 저녁 드디어 사적으로 만나기로 했다.

"아아- 응. 오늘 약속 잡아서 잠시 나갔다 오려고."
"흠- 그래요? 알겠어요."

잠시 의심을 하는 듯 해 보였지만 알겠다며 바로 나타샤는 자리를 떠났다. 하긴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한정되어있고 약속 잡는 경우도 무척이나 드문 일이어서 의심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옷무새를 가다듬고 그녀와 약속 잡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 오셨어요?"

약속장소는 늘 항상 보는 공원이었다. 여기 온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말을 한 것이 떠올라 이쪽으로 약속을 잡았다. 공원에 도착하자 보인 그녀는 늘 보던 운동복과는 다른 옷인, 하늘하늘 거리는 레이스가 수놓아진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이렇게 보는 그녀는 패기와는 다른 분위기가 흘렀다.

"스티브 씨. 그럼 어디 먼저 갈 건가요?"
"아. 일단 시간도 시간이니 식사부터 하는 것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녀의 손을 잡고 미리 알아보았던 식당으로 향했다. 가끔 토니가 데이트할 때 좋다면서 자랑하듯이 말한 곳이었다. 확실히 분위기는 연인끼리 오면 좋을듯한 분위기였다.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창가 쪽에 자리 잡고 주문을 한 뒤 음식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스티브 씨는 무슨 일을 하세요? 매일 아침마다 운동하시던데..."
"아- 그냥.. 힘이 많이 필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쉴드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그러니 그녀가 알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회사나 힘이 많이 필요한 일- 이라고 둘러대는 것이 좋을 거 같았다. 일단 힘이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일이니까-

"현 화씨는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그냥 아르바이트하면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어요. 공부도 겸사겸사 하고 있고."

그렇게 그 대화를 시작으로 어디쯤에서 사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휴일에는 무엇을 하는지 등을 서로 묻고 답하며 식사를 이어서 식사가 끝난 후에도 같이 걸으면서 조금씩 더욱 알아갔다.

"시간이 늦었는데 이만 들어가 보는 게 좋을 거 같네요."
"네. 이렇게 약속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내일 아침에 봬요."

손을 흔들면서 사라지는 그녀에게 화답으로 같이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방패로 돌아가는 길, 알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이렇게 계속 만나도 되는 것일까? 내가 그녀를 지켜줄 수 있을까? 패기와 같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건 후에 일이다. 일단 그녀를 계속 만난다는 것이 나한테 중요한 일이었다. 이렇게 가끔이라도 그녀와 계속 만나고 싶다.


일 : 첫만남


'너는 재능이 있으니까 꼭 우승해야 한단다.'

꿈속에서 어릴 적 대회에 나갈 때 응원이라고 말을 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고 동시에 잠에서 깨어났다. 돌아가신지 3년이 조금 넘었고, 한국을 떠난 지 몇 개월이 되었지만 가끔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계를 보니 6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어서 아- 오늘 잠도 결국은 다 잤구나- 라는 생각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건강달리기를 나갈 준비를 해본다.

"아아- 왜 자꾸 꿈에서 목소리가 들리는 거지..."

돌아가시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꿈에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해 외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굿을 해보았지만 계속해서 들려왔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계속 그러는 거 같다. 그냥 견딜 수밖에."라는 외할머니의 말을 듣고 꿈에서 아빠가 나올 때마다 오늘은 운이 별로겠구나- 라고 생각하는 버릇을 들여왔다.
대충 세수를 하고, 머리를 꽉 올려묶은 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서 근처 공원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 시간에는 사람이 별로 없구나-"

늘 항상 운동을 나오는 공원에는 이 시간에는 사람이 별로 없다. 딱 한 사람 늘 항상 빠른 속도로 뛰는 남자만 보일 뿐이었다. 오늘도 공원을 산책하다 보니 저 멀리서부터 뛰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빠른 속도로 뛰어오는 듯 하다가 점점 속도가 늦춰지는 듯하더니 내 옆에서 "Hi"라고 하고는 다시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뭐지? 인사를 하고 바로 가버리는 그 남자를 멍하니 보다가 오기가 생겨 빠르게 뛰어가 그 남자 옆에서  "Hello"라고 하고는 추월을 했지만 금방 그 남자에게 따라잡혔다.

"하아- 굉장히 빠르게 잘 뛰시네요."
"그쪽도 만만치 않네요."

헉헉대는 나에 비해 그 남자는 무척이나 멀쩡해 보였다. 운동은 된 듯하지만 기분이 정말 묘해졌다.

"이 시간대에 주로 운동을 나오시나 봐요?"
"네. 이쯤 해서 나와야 방해 안 받고 운동하기 편하거든요."

호흡이 안정되자 그 남자가 나한테 질문했다. 아마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계속 여기서 운동을 했었던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운동을 오래 했다는 사실은 대충 몸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 남자가 날 빤히 바라보더니 손을 쓱 내밀었다.

"스티브 로저스라고 합니다. 그쪽 이름은?"
"정 현화라고 해요. 그냥 정이나 현이라고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 남자가 내민 손을 잡고 흔들어 보았다. 운동하면서 그렇게 만난 스티브와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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