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포일러 주의

드림포케합작 : http://sumsome1.wix.com/dream-poke

 

 

 

 

풀들이 무성하게 자리 잡은 이곳. 평범한 길이 없었기에 조심해서 풀숲을 헤쳐나가면서 걸어갔다. 최대한 포켓몬을 만나지 않기 위해 발걸음을 느리게 해서 걸어갔지만, 앞에서 오던 무언가와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다. 포켓몬인가? 상황을 직면하기 싫어 두 눈을 질끈 감아버렸지만, 포켓몬의 울음소리가 아닌 "괜찮아요?"라고 물어오는 트레이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았던 두 눈을 떠 앞을 바라보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손을 내밀어 오는 금발의 트레이너가 있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닐세. 내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까. 마을에 가는 길인가?"
"네. 저 앞에 있는 해안시티에 갈려고요."
"그럼 같이 가도록 하지. 그곳에 가다가 길을 잃어버려서 말이지."


내미는 손을 잡고 일어서서 트레이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선을 피하면서 말끝을 흐리는 게 무언가 이상한 거 같았지만 그래도 혼자 이 풀숲을 헤쳐나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같이 해안도시로 향했다. 이름을 물어보니 '스티브'라고 알려주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지만 "내 이름이 많이 흔하다네."라는 말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했다.


"그나저나 그쪽의 이름은-"
"현화라고 해요."


내 이름을 작게 중얼거리면서 뒤에 어떤 말을 한거 같지만, 너무 작은 소리였기에 듣지 못했다. 서로의 사이에 작은 대화가 몇 번 더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해안시티에 도착했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갈 길을 갈려는 찰나 스티브가 내 손을 잡았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자 황급히 손을 떼면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오는 스티브였다.


"미안하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또 만날 수 있을까 해서."
"서로의 시간이 맞는다면 만날 수 있을 거에요."
"그래. 체육관 우승에 대한 무운을 빌지."


짧은 인사를 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리는 스티브였다. 저기- 라고 부르면서 붙잡으려 했지만 잡기도 전에 이미 다른 곳으로 향했기에 허공에서 방황하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사로잡혔다. 그나저나 내가 체육관을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을 했던가-?


폭우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람이 세게 부는 탓에 혼자서는 중심을 잡지 못해 주변에 있는 물건을 꽉 잡아야만 했다. 시선도 제대로 두기 힘든 이 날씨. 당장 어떻게든지 멈춰야만 한다. 한걸음, 한걸음 바람에 맞서 천천히 옮겼지만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넘어질 뻔한 그 순간 뒤에서 누군가 붙잡아 준 덕에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스티브?"
"괜찮나 현화."


나를 붙잡아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스티브였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걸까. 당신이 여기에 어떻게 있느냐는 질문을 하려던 찰나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외침에 질문할 틈이 없었다. 시선을 앞으로 옮겨 소리에 최대한 집중했다.


"가이오가를 멈춰야 해요."
"가이오가를 멈추려면 주홍 구슬이 필요해. 하지만 여기에 없다는 게 문제인데-"


주홍구슬?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이었다. 누군가한테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 가방 안을 뒤져보자 주홍빛으로 빛나고 있는 구슬이 있었다. 가방 안에서 꺼내 들자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어떻게 저게 저기에 있는 거지?"라는 여러 의문 섞인 말들이 계속해서 들려왔고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올려다보자 스티브가 내 손에 들린 주홍 구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화에게 이게 있을 줄 전혀 몰랐는데."
"어쩔 수 없어. 이게 남은 방법이야. 현화, 가이오가를 부탁할게."
"이 슈트를 입으면 가이오가가 있는 곳까지 갈 수 있을 거야."


앞에서 외치던 사람들이 내 손에 슈트를 건네주면서 부탁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스티브가 걱정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나는 "괜찮아요."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당 안은 깊고 어두웠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진동이 커져만 갔다. 사당의 끝에 다다르자 커다란 동굴이 나왔고 물이 잠겨있는 곳에서 가이오가가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등에... 타라는 거야?"


작은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자 마치 그렇다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는 가이오가였다. 건네받은 슈트를 갈아입고 등에 올라타려는 순간 귀에서 지지 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일을 부탁해서 미안하네. 깊게 들어가면 더는 무전도 안될 거고. 그러니- 무사히 나왔으면 해, 현화."
"걱정 말아요. 스티브. 무사히 다녀올게요."


이름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다시 한 번 괜찮다는 말을 하고 가이오가의 등에 올라탔고, 내가 올라타자마자 가이오가는 물속 깊은 곳으로 헤엄쳐 들어갔다.
물속에서 나와 슈트를 벗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형형색색의 수정이 커다랗게 박혀 빛을 발하고 있었고 가이오가는 아까와는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켓몬이 볼 밖으로 나오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원시회귀를 했고 동굴 안에는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길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었지만, 무사히 나와 돌라는 스티브의 말이 떠올라 전력을 다해 가이오가와의 베틀에 임했고 이내 가이오가는 내 손에 아까와는 다른 모습으로 얌전하게 들어왔다.


"현화!"


밖으로 나오자 아까의 먹구름은 온데간데없고 맑은 하늘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은 성공했어- 라며 서로 껴안으며 기뻐하고 있었고 막 밖으로 나온 나를 발견한 스티브는 나에게로 달려와 수고했다며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꽉- 껴안았다.


"그것 봐요. 제가 괜찮을 거라고 했죠?"
"걱정했어. 혹시 어떻게 되나 싶어서."


나를 내려놓고 어디 다친 곳이 없는지 둘러보고는 안심이 되었는지 내 손을 꽉 잡아오는 스티브였다. 두근- 아까와는 다른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아까 하지 못한 질문을 하려던 찰나 주변의 사람들이 나를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스티브와 나는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주변사람들의 말에 대답하면서 스티브를 찾았지만, 스티브는 전과 똑같이 어디론가 멀어져갔고 이번에도 나는 그를 붙잡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스티브와의 만남이 머리 안에서 추억으로 잡아갈 무렵 모든 체육관에서 우승하고 포켓몬 리그에 드디어 도착했다. 수많은 트레이너와의 배틀, 체육관 관장들에게서 들은 여러 조언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어서 오세요, 현화 님. 포켓몬 회복을 도와드릴까요?"
"네. 부탁해요."


회복된 포켓몬을 받아들고 포켓몬 리그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체육관 우승의 증거인 배지들을 보여주자 옆으로 비켰으면서 문이 저절로 열렸다. 문 건너편에는 어둡고 깜깜해 앞에 뭐가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서면 안된다는 생각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어두웠던 실내는 불빛이 들어왔다. 역시 최종목표인 곳 덥게 안에는 화려하고 각 관문을 지키는 사람들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뭐야. 새로운 트레이너?"
"현화라고 합니다. 그럼 승부를 부탁합니다."
"현화? 아- 그 녀석이 말한 아이가 너구나? 그럼 승부를 시작하자고."


처음 상대는 '토니 스타크'였다. 마지막 말이 무척이나 신경 쓰였지만 의심은 뒤로한 체 베틀에만 열중했다. 길면서도 짧은 베틀이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가려던 찰나 "우리 챔피언님이 꽤 오랫동안 기다리셨다고."라는 말을 하면서 다음 관문으로 나를 밀어 넣듯이 넘겨버렸고, 그곳의 문은 굳게 닫혔다. 순간 당황했지만 바깥으로 나가는 방법은 베틀에서 지거나, 이기거나 였기에 상처 입은 포켓몬을 치료하고 바로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 둘, 셋. 남은 사천왕 들을 처치하고 드디어 챔피언의 방으로만 가는 길만이 남았다. 오는 내내 처음 토니 스타크에게 들은 비슷한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아. 너가 걔구나?" 라던가 "왜 그렇게 찾았는지 알 거 같네."라는등의 말들을 들었다. 왜 그런 말을 하냐는 질문을 던지면 한결같이 "끝까지 가 봐. 그럼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야."라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제 마지막이야."


심호흡을 하고 빛이 새어나오는 챔피언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곳은 무척이나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고 할머니에게 이야기로만 들었던 물건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다. 챔피언은 나이가 많은 옛날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때 만났던, 빠르게 사라져 잡지 못했던 그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스티브...?"
"맞아, 현화. 기다리고 있었어."
"당신이 챔피언이었군요."


대답대신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스티브의 뒤로 최종전이라는 것을 알리는 듯이 그의 포켓몬들이 나타났다. 괴물 볼을 꽉 쥔 손에 긴장이라도 한 듯 땀이 차기 시작한다. 눈을 감은 뒤 심호흡을 크게 내쉬어 보였다.


"그럼 마지막 베틀을 시작하죠. 스티브. 아니- 챔피언."
"나도 바라던 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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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X영웅

 

 

 

감았던 눈을 뜨면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밝아진 시야로 주의를 한 번 둘러보고 심호흡을 깊게 내쉬어본다. 바쁘게 날 지나쳐 지나가는 사람들과 반대방향을 향해 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어느새 굳게 닫힌 문앞에 도착한다.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차가운 냉기가 느껴져 나도 모르게 몸이 살짝 떨려온다. 하지만 난 이 문을 열어야 했고, 문 뒤에서 벌어진 상황을 이해해야만 했기에 열고 상황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커다란 화면에 나타나 있는 지도와 빨간 점들은 사고지점을 나타내는 거란 걸 물어보지 않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서로 어디로 배치가 되고 어디로 나가야 되는지 지휘하느라 무척이나 바빠 보였다. 여기 있어봤자 방해만 될 듯해 그냥 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가려는 찰나 중심가 부분에 커다랗게 빨간색 표시가 떴고 마치 위험하단 걸 알리는 듯이 커다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다. 내가 찾고 있던 그였다.

 

 

"현화. 자네는 여기 남아."

"왜요? 이쪽 일은 제 담당이잖아요."

"...저건 누구를 뜻하는지 자네가 더 잘 알잖아."

 

 

걱정어린 저 눈빛. 진심이 담겨있지만, 걱정일지 아니면 동정을 담은 눈빛인지 알 수 없었다. 저런 표시가 나타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건 나뿐이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고 인재를 잃을 수 없다며 항상 이런 경우마다 나를 빼 온 거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 내 팔을 붙잡으며 가지 말라는 말에 "상관 말아요. 내 일이에요."라고 쏘아붙이며 출동하는 무리 속에 섞여 차에 올라탔다.

 

출발하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뒤통수가 무척이나 따갑게 느껴졌다. 차에 탄 인원들이 나를 한 번씩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무척이나 거슬렸다. 원래 이런 임무 쪽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었고 더욱더 이번 같은 경우에는 감정적으로 나올 수 있단 이유로 계속 배제됐는데 이제 와서 같이 활동한다는 것에 관심을 두는 걸지도 모른다. 

 

 

"그만 쳐다봐요. 전 제 일을 하러 온 것 뿐이에요."

 

 

그 말 한마디에 시선을 돌리는듯한 느낌이 든다. 저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닌 나와 '그 사람'의 관계겠지. 차 안에는 적막이 흐르고 바깥의 소리가 소란스러워 지는 것을 보면 아마 현장 근처까지 온 듯했다. "도착했다."라는 말과 함께 일제히 빠른 속도로 튀어 나갔고 어서 나가자고 말을 하려다 떨리는 손을 발견했는지"천천히 나오세요." 내 옆에서 묵묵히 운전하던 그는 걱정스럽단 목소리를 남기고 내렸다.

 

차 안에는 나 혼자 남아있었다. 손이 떨려오지만 차만 타면 이런다는 걸 그만이 알고 있었고, 그는 지금 내 옆에 없었기에 어떻게든 진정하려고 손목을 꽉- 붙잡았다. 어느 정도 떨림이 멈춰오고 손을 놓자 손목에는 빨갛게 손자국이 남아있었다. 가만히 빨간 자국을 바라보다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는 차 문을 열어 그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내가 내리지 않고 남아있던 시간은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그들은 이미 바닥에 피를 흘리면서 널브러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없나- 라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누구도 발견할 수 없었다. 부서진 건물잔해와 무기들, 피를 흘리면서 널브러진 동료 사이에서 발견한 것은 피를 밟아 생긴 발자국이었다. 이 발자국을 따라가면 이 일의 근원이자 내가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따라가 보았다.

 

 

"어서 와. 현화."

 

 

발자국을 따라 도착한 곳은 아무도 없고 부서진 건물 잔해들만 곳곳에 널려있는 도시의 중심이었다. 높게 쌓아올려 진 잔해의 위해 누군가 앉아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지만, 햇빛에 의해 시야가 가려지면서 누가 부르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찌그러진 눈과 햇빛을 피하고자 손을 올린 사이 높은 곳에 올라앉아서 날 내려다보던 사람이 내려오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고 이내 누군가의 힘으로 손을 강제로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야."

"이거 놔요."

 

 

그늘이 져 있었고, 내 눈앞에는 그가 서 있었다. 신경질적인 말투로 내뱉었고 놓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손을 금방 놓아버리는 그였다. 놓자마자 잡혀있었던 손목 부분이 아려오기 시작했고 다른 손으로 움켜잡아 아픈 것을 풀어보기 위해 이리저리 손목을 움직이면서 그를 쳐다보자 뭐가 좋은 것인지 미소를 짓고 있는 그였다.

 

그는 평소 계속 봐오던 모습과 똑같은 그였다. 임무나 임무를 나갈 때 입던 정장도 똑같았고, 그의 무기이자 상징인 방패도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변한 거라면 누군가의 죽임이 불필요한 경우라면 죽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그였더라면 지금은 징표라도 되듯이 다른 사람의 피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닦아내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걷어 내려 했다. 내가 무슨 행동을 할려고 했는지 알아차린 그는 내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 쪽으로 내 손을 끌어당겼다. 내 손을 잡은 그는 천천히 자신의 얼굴선을 따라 천천히 내리더니 입술 주변에 다다르자 따뜻하면서도 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히이익-!"

"그렇게 놀랄 필요는 없을 건데."

"갑자기 그러면 안 놀라요?"

 

 

깜짝놀라 자칫하면 주먹이 나갈뻔했다. 놀라서 두근거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의 두근거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급하게 손을 빼면서 당황하는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옅은 미소를 짓는 그였다. 이런 장난은 치지 않는 그였지만 이상하게 무슨 반응을 이끌어 내려는 건지는 몰라도 아까까지만 해도 맴돌던 긴장감은 이미 풀려버린 지 오래였다. 머릿속으로 천천히 마음먹은 일들을 되짚어보았다. 이곳에서 이 일의 근원을 찾으려고, 이 일이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걸 알았기에 자발적으로 나왔었다는 것까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리고- 무엇을 할려 했더라?

 

 

"현ㅎ-?"

 

 

갑자기 머리가 핑- 돌기 시작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지 전혀 몰랐다. 분명 스티브를 만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오는 터라 당황한 것까진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점점 몽롱해지는 의식의 끝에 결국 자연스럽게 눈이 감겼고 끝 가지 붙잡고 있던 의식은 끊겨버렸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그녀는 눈을 감고 쓰러질 뻔했지만 간신히 부축했다. 역시- 이 방법이 최선책이었다. 그녀의 귀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인이어를 빼낸 뒤, 손에 올려 힘을 꽉 쥐자 산산조각이 났고 근처에 있는 건물잔해 위에다가 버렸다. 안정적인 자세로 그녀를 안은 뒤, 근처에 놓아둔 수면가스의 통을 잠갔다. 나는 이 가스를 맡아도 아무렇지 않지만 이런 것에 대해 면역이 없는 그녀라면- 천천히 공기 중에 냄새를 썩이게 한다면 그녀는 금방 잠들 거라는 생각을 했고 예상대로 그녀는 잠들었다.

 

 

"완료하셨나요?"

"그래. 가지."

 

 

헬멧을 다시 눌러쓰자 한쪽 귀에서 짧은 잡음이 들려온 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본부에서의 연락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금방 간다는 말을 하자 나와 그녀를 데려갈 비행선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고는 이내 연락이 끊겼다. 건물 잔해들 사이에 나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주변은 무척이나 조용했고, 오로지 내 귀에는 그녀의 작은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현화."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깊은 잠에 빠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의 어깨에 손을 올려 편안한 자세로 잠든 그녀는 마치 무슨 꿈이라도 꾸고 있는듯해 보였다. 그래-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깊은 꿈에 빠져있어 줘.

 


 

폭신하면서도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진다. 그것을 꽉 잡고 얼굴을 비비면 얼굴에서도 기분 좋은 느낌이 똑같이 느껴진다. 조금 더- 조금 더 이곳에서 잠들어있고 싶어- 배를 덮고 있는 이불 같은 것을 잡아당기면서 몸을 웅크리면 이 촉감이 몸 전체에 퍼져 나간다.

 

하지만 그 생각도 얼마 가지 못하고 부스럭거리는 주변소리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가 거슬려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더듬거리다가 똑같은 부드러운 감촉에 두툼한 베개 같은 것을 잡아끌어 양 귀를 막아보지만, 소리는 멈출 줄 몰랐다.

 

 

"아- 조금만... 조금만 더 잘래요..."

 

 

눈도 뜨지 못하고 잠기운이 약하게 섞여 있는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자 소리는 이내 멈추고 의자를 끄는듯한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고 더는 어떤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 불어오는 소리만이 귀에 들리기 시작하자 다시 잠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잠이 들려 했지만, 갑자기 든 생각 하나가 잠을 달아나게 하였다. 혼자 사는 집에 누구랑 같이 있는 거지? 애초에 나는 임무 때문에 출동했었고-

 

 

"여기는 어디야...?"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한 하늘빛이 돌고 있는 침대보에 얇은 이불, 귀를 막았을 때 사용한 거 같은 하얀색 베개가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 살랑거리며 들어오는 바람 때문에 레이스로 장식되어있는 커튼은 바람을 따라 펄럭이고 있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긴장감 때문인지 침대보 위에 올려진 손에는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입고 있던 내 옷은 이미 하얀색 드레스로 바뀌어 있었고 묶여있던 머리도 풀어져 있었다. 이 방 어디에도 쓰러지기 전에 입고 있던, 가지고 있던 물건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일어났네, 현화."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책을 덮는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내 손 위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손 위에 올려진 손을 따라 시선이 멈춘 곳에는 스티브-그가 앉아있었다. 손을 빼내려 했지만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이 살짝 힘을 주어 가볍게 내 손을 누르는 그였다. 그와 만났을 때 내 손목을 잡고 있던 힘보다는 약하게 느껴졌다.

 

 

"여긴 어디에요? 왜 절 데려온 거에요?"

"쉴드가 찾지 못하는 곳."

 

 

짧은 대답을 하고는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두었던 책을 탁자 위에 올려놓는 그였다. 책을 옮길 때에도 조금 멀리 떨어진 컵을 챙겨 들어 나에게 건넬 때까지도 내 손을 누르고 있는 힘을 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쉴드가 찾지 못하는 곳이라면 도망가지도 못해요." 라고 컵을 받아들면서 말을 하자 금방 손을 떼는 그였다. 쉴드가 찾아내지 못한 곳이라면 조사를 계속해오던 나도 발견하지 못한 곳이란 걸 단번에 직감했고,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가정해도 금방 붙잡혀올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를 한번 바라보고 손에 들린 하얀색 컵 안을 보았다. 컵 안에는 붉은빛이 도는 시원한 음료가 들어있었다. 한 모금을 마시니 석류 맛이 입안 곳곳에 퍼져 나간다. 

 

 

"쉴드가 찾지 못하는 곳도 있었네요. 거의 모든 곳을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쉴드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니까."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에 깍지를 낀 손은 편안하게 무릎 위에 올린 채 나를 바라보는 스티브였다. 의식이 끊기기 전에 보았던 옷과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라곤 징표라도 되듯 묻어있던 피가 말끔하게 지워져 있다는 점이었다. 마치 평소 봐오던 모습을 변한 거 없이 그대로라는걸 보여주듯이 예전과 무척이나 똑같았다.

 

무언가 고민이 있는 건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건지 엄지손가락이 깍지낀 채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찡그려지면서 빤히 바라보자 내 표정을 읽었는지 손을 풀고는 허벅지 위에 올려놓는 그였다.

 

 

"...이제 여기서 지내면 돼."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말 그대로야. 이제 쉴드와 엮일 없이 여기서 같이 지내면 돼."

 

 

자칫하다 손에 들린 컵을 침대 위에 엎을뻔했다. 사라졌다 갑자기 나타나더니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는 곳으로 데려오고 그 어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놓고 여기서 지내라니. 쉴드는? 다른 동료는?

 

생각할 시간이라도 줄려는 듯이 이 방을 나가려는 스티브 앞을 가로막아야만 한단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침대에서 벗어나자마자 몸이 살짝 기우뚱했지만 금방 다시 중심을 잡고 그의 옷깃을 잡고서 앞을 가로막았다.

 

 

"돌려보내 줘요. 쉴드로 돌아가야 해요."

"아니 쉴드로는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

"왜요? 계속 의지하고 버텨온 곳이에요. 전 돌아가야만 해요. 돌려보내지 않을 거라면 타당한 이유를 설명해줘요."

 

 

설명해주길 아무리 바라도 스티브는 내 양팔을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잡고 있던 옷깃을 놓자 내 양팔에 느껴지던 힘도 천천히 풀리고 있었다.

대답해주길 바랬지만 스티브는 그대로 나를 지나쳐 이곳을 나갔다. 다시 붙잡아서 묻고 싶었지만 나갈 수 있는 문은 굳게 잠겨 움직이지 않았다. 아무리 쥐고 흔들어도 열리지 않는 문은 내가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단 걸 알려주고 있었다.

 


 

망설였다. 어떻게든 이곳으로 들어오게 하려고 했었다. 그녀가 완강히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만을 주장한다면 그것마저 꺾어버릴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표정에, 손짓에 망설이지 않겠다는 다짐이 천천히 녹아내렸다.

그녀의 눈빛에 생각이 무뎌졌고, 체온에 굳게 먹은 마음이 흔들렸고, 목소리에 생각하는 것을 멈추게 하였다.

 

다시 심호흡하고 들어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까- 이 생각을 했지만, 지금은 그녀 혼자서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조금 있다가 다시올께."

 

 

복도를 지나가면서 힐끔- 쳐다보는 사람들, 나를 붙잡고 "그녀는?"이라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시하거나 아직이라고 대충 둘러대고는 작은 실마리라도 잡아 대화를 이어 나가보기 위해 그녀의 물건이나 좋아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챙겼다. 이곳에 데리고 올 때 입고 있던 옷이나 소지품을 챙기고 부탁해놓은 좋아하는 음식을 챙겨 들고선 다시 그 방앞으로 향했다.

 

분명 자신 있게 열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 앞에 다시 서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뒤엉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 생각했다.

 

 

"지금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거니까."

 

 

다시 한 번 되짚으면서 정리하자 가득 채우고 있던 복잡한 생각들은 하나하나 매듭풀 듯이 풀리더니 천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해줄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나간 뒤 한참을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아 가만히 있다가 발끝부터 느껴지는 추위에 엉금엉금 침대로 기어가 이불을 몸에 감아 눈만 내밀고선 침대에 누웠다.

 

아무말 없이 그는 떠났다, 그리고 아무말 없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그렇게 행동해야만 했던 이유를 적어도 나에만큼은 설명해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았고 무언갈 망설이는 거 같았다. 무엇을 망설이는 거지? 골똘히 생각을 해보아도 왜 그런 행동을 내 앞에서만 보인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마치 지금 내앞에서 보이는 그런 행동들은 예전의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들어오는지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기에 뜨고 있던 눈을 지그시 감고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무언가를 내려놓는 듯한 소리, 스르륵- 의자에 무언가를 걸쳐놓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나 난 뒤 그 뒤로는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계속 가만히 소리에 집중해도 불어 들어오는 바람 소리밖에 들리지 않아 눈을 뜨고 확인하려는 순간 침대에 앉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미안하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머리를 쓰다듬고는 바로 나가버리는 그였다.

멍하니 그가 나가버린 문을 바라보았다.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나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알 수 있는건 모든 게 변해버린 것만 같은 그여도 아직은 어딘가에 내가 알고있는 그의 모습이 남아있다는 건 변함없는 사실이다.

 


 

 

결국은 말하지 못했다. 그녀의 물건들 돌려주고, 허기가 졌을까- 작은 걱정에 평소에 즐겨 먹던 음식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내가 어쩌다가 이곳으로 넘어왔는지, 내가 왜 당신을 데려왔는지 모든 이유를 설명해주고 싶었지만 다시 한 번 그녀를 보니 머릿속으로 생각한 말들이 지우개로 지워버린 듯이 없어져 버렸다.

 

내가 겪은 일 때문에, 내 욕심 때문에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내가 망설이는 바람에 그녀에게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해주지도 못했다. 

 

 

"...미안하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을 내뱉었다. 다른 말들도 이어서 말하고 싶었지만, 곤히 잠든 그녀를 깨우고 싶지는 않았다. 잠든 그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 방을 나왔다.

 

이번 상황에서만큼은 결단력이 무척이나 필요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왜 자꾸 그녀를 보면 망설이는 걸까. 마치 새장 속의 새처럼- 그 어떤 거에도 물들이고 싶지 않은 걸까? 그녀를 보면 볼수록 결심해온 것들이 흔들리고 망설여지게 된다.

 

 

"한동안은 만나면 안될 거 같군."

 

 

한동안 만나지 않는다면 이런 망설임도 없어지겠지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그때는-

 


 

 

한동안 그는 찾아오지 않았다. 식사라던가 옷들은 검은색과 빨간색들이 섞인 옷을 입은 사람들이 종종 가져다주었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내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이 방안이 전부였다. 책을 읽는다든가, 창밖으로 밖의 경치를 구경한다든가, 아니면 수면을 취한다는 등의 한정적인 행동들 뿐이었다.

 

나가고 싶다- 라는 생각은 종종 했었다. 하지만 이 방을 나섰을 때 겪게 될 상황은 생각조차 하기 싫었기에 그 생각들은 이미 접어 없애버린 지 오래였다. 멍하니 창밖을 통해 풍경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지냈었다.

 

달빛이 들어오는 어느 날 밤, 그날과 똑같이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이불을 덮고 베개를 끌어안고 단잠에 빠져있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단잠은 깨지고 말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침대 한쪽 부분에 무게가 쏠리는 느낌이 들어 몸을 일으켜 보자 그곳에는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그가 엎드려 있었다.

 

 

"스티브?"

 

 

오랜만에 본 그는 처음 다시 만났을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임무를 나갈 때 입고 있던 복장과 똑같았고, 그의 무기이자 상징인 방패는 방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었다. 전투를 끝내고 온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미의 징표라도 되는 것인지 몸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이었더라면 지금은 슬픔에 잠겨있는 눈빛이었다.

 

다시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에 손을 뻗었다. 뻗어오는 손길에 그는 살짝 주춤하는 듯 해 보였지만 조용히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하나하나 그의 얼굴에 묻은 피를 닦고, 때려는 순간 그의 손이 내 손 위로 올라왔다.

 

 

"가지 말아줘."

"...어디 안 가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내 허리 부분으로 손을 뻗은 그는 허리를 감싸고 내 무릎에 얼굴을 묻고 한참 동안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째서 그는 또다시 나타난 걸까. 생각이라도 갑자기 바꾼 걸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뒤엉켰지만 그건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문제였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나는 그를 달래주는 행동밖에 할 수 없었다.

 

 

 

 

그곳을 벗어나지 않았다. 애초에 돌려받은 휴대폰에서는 그 어떤 부재중도 오지 않았다. 심지어 쉴드에서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생각하는 것을 강요받고 타협 받은 것도 아녔다. 이곳에서 나는 나인 그대로 남아있었다. 똑같은 일과를 보내고 달빛과 함께 밤바람이 불어올 때쯤 찾아오는 그를 맞이하고 조용히 토닥여주는 그런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아직도 내가 왜 이곳으로 왔는지, 그가 왜 그곳으로 넘어갔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 그가 나에게 호의를 보이고 예전과 똑같이 대한다면 내 앞에서의 그는 과거의 모습과 똑같기에 나는 더는 묻지 않았다.

드림 사망합작 : http://boiboss.wix.com/yumenosi

 

 

눈을 감았다가 뜨면 제일 먼저 보인 건 웃고 있는 너였다. "긴토키- 뭐해 안 오고-"라며 빨간 우산을 빙그르르- 돌려 보이면서 나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너라던가, 아니면 "파르페 먹자. 파르페."라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둘이 서로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으러 가자며 내 팔을 붙잡고 끌고 갈 때라던지 너는 언제나 항상 웃고 있었다. 종종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일 때마다 무슨 일 있느냐고 물으면 "아무 일도 없는걸?"이라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다시 웃어보시곤 하던 너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만큼은 달랐다. 최근 들어 너의 표정은 계속 어두워져만 갔고, 무슨 일이냐는 질문에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이라고 말끝을 흐리면서 마치 이 상황을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는 듯한 그런 말투로 항상 대답을 해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데 그때마다 마치 너는 내 도움을 받아도 해결이 안 된다는 듯한 그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긴토키 나를 그냥 내버려 둬."

"타카라..."

"이제... 제발 그만 해. 부탁이야..."

 

계속 물어볼 때마다 아무 일도 아니라며 대답해오던 너는 어느 날, 나에게 소리쳤다. 평소에 영화나 드라마에 슬픈 장면이 나와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네가, 나에게 제발 그만 하라며 나를 붙잡고 눈물을 보이고 있었다. 눈물을 보자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 너를 붙잡아야 하는데, 항상 물어보던 질문이 아닌 괜찮을 거라는 말을 해야 된다고 속에서는 자연스럽게 말을 하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는 튀어나오지 않았고, 도망치듯 멀어져가는 너도 붙잡지 못했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네가 보이길 바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어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너는 보이지 않았고 요시와라에 가서 행방을 물어보아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올 뿐 너를 찾지 못했다.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츠쿠요를 찾아갔다. 그녀에게서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지만, 그녀가 말한 말에 그곳에 발이 묶였다.

 

"타카라라면 혼자 있고 싶다 했어.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정리할 시간이라니? 나한테는... 나한테는 그런 말이 전혀 없었는데?"

 

역시- 라며 한숨을 푹 쉬고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그녀였다.

 

"요 며칠 전에 이곳에서 사건이 하나 터졌어. 타카라랑 친했던 아이였는데 사고로 그만 죽고 말았는데 그 현장에 타카라가 있었거든. 자신이 도움만 줬다면 살았을 거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였다. 그런 부분에서 아주 힘들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최근 들어 행동이 변한 이유도 이 이유였다는걸 알고 나니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해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려주지 않으려고 했던 것도 있지만 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속 추궁했으니 너도 심리적으로 얼마나 힘들어했을지 짐작이 가기 시작한다.

 

눈을 감았다가 뜨면 괜찮다며 그렇게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하다는 네가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너는 보이지 않았고 이제 이곳에는 더는 없다. 내 눈앞에는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너의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와 함께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네가 도움을 준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너의 사진 앞에서 울고 있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내가 다른 방법으로 너에게 다가갔다면 넌 이 상황까지 왔을까? 지금에 와서야 이런 생각을 해봤자 이미 죽어버린 너는 다시 살아나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자리에 서서 애도하는 일 밖에 없다. 아직 나는 너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는다. 왜 네가 죽음을 택해야 했는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알고 있지만 내가 도움 하나 주지 못했다는 것이 나를 힘들게 해.

 

영영 보지 못할 것만 같았던 네가 이제 눈을 감았다가 뜨면 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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