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구 : 공중전화 부스

드림 평일 전력 ; Dolce 3회 주제 : 공중전화 부스

약간의 엔미긴 요소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어느 한적한 길 어딘가에 낡은 공중전화 부스 하나가 놓여있다. 낡은 겉모습 때문에 전화가 걸지 긴가민가 한 상태에서 수화기를 손에 들고, 동전을 넣은 뒤 익숙한 전화번호를 누르면 신호음이 들린다. 마치 "아직은 할 수 있어."라고 말하듯이 멀쩡하게 말이다. 역시 포기하는 게 좋을듯해 수화기를 내려놓으려는 순간 건너편에서 "여보세요?"라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를 듣고 그만 황급하게 수화기를 내려놓아 버린다. 두근두근- 이상하게도 아직도 너의 목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두근거리기 시작해.


2.

지나칠까 말까 고민했지만 역시 오늘도 그 낡은 공중전화 부스 안으로 들어가 수화기를 집어든다. 걸까 말까 머릿속으로 고민하지만, 손은 내 의지와 다르게 동전을 넣고, 익숙한 전화번호를 누른다. 연결 음이 들리고 다시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로 "여보세요."라는 말이 들려온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제와는 무척 힘이 빠진 그런 목소리였다. 너의 목소리를 듣고 '왜 그래 무슨 일이야?'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 라는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지만, 꿀꺽 삼키고서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3.

목소리가 무척이나 듣고 싶어졌다. 듣지 말아야지, 이러면 안 돼. 라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오늘도 그 공중전화 부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익숙하게 수화기를 들어, 동전을 넣고, 전화번호를 누른 뒤 부스의 벽에 기대어 연결 음을 가만히 들어본다. 달칵- 연결 음이 끊기고 누군가가 받는듯한 소리가 들렸지만, 건너편에서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누구지? 다른 사람인가? 라는 생각에 오늘은 날이 아닌가 싶어 내려놓으려는 순간 건너편에서 "긴토키."라고 가장 듣고 싶었던 목소리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그녀였다. "끊지 마. 끊지 말아줘 긴토키."라는 말이 들려왔지만 빠르게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두근- 첫날 전화를 걸었던 날과 다르게 심박동이 무척이나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4.

한동안 그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가지 않았다. 물론 그녀에게도 전화를 걸지 않았다. 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소중한 그 사람들에게서도 자취를 감췄는데 내 욕심 하나로,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욕심 하나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 것이었기에 이 선에서 끝내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하는 발걸음도 점점 뜸해졌다.


5.

그곳이 머릿속에서 잊혀갈 무렵, 아무도 다니지 않는 조용한 밤. 길을 배회하다가 우연히 그곳에 도착했다.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있는 낡은 공중전화 부스. 혹시 아직도 전화가 걸릴까 고민했지만 역시 안 하는 게 좋을지도.


6.

왜 항상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해놓고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동안 잡지 않았던 수화기를 잡아들고, 익숙하게 동전을 넣어 전화번호를 누른 뒤 조용히 네가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연결 음이 들리고 끊으려던 순간 "여보세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고 싶어.'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다시 꿀꺽 그 말을 삼켜버렸다. "여보세요?"라고 재차 물어오는 말에 결국 참지 못하고 "오랜만이야."라는 말을 내뱉어버렸다.


7.

"나도 오랜만이야. 긴토키." 그녀의 말에 참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렸다.


8.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드는 어느 한적한 길 어딘가에 낡은 공중전화 부스 하나가 놓여있다. 달빛이 길을 밝히는 어느 늦은 밤 오늘도 그 공중전화 부스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평소 같았으면 이 시간에는 보통 아무도 없기 마련이지만 누군가 그곳에 몸을 기대어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어둠에 가려져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모습을 보이면서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한 번에 알 수 있었다. 익숙한 빨간 우산을 쓰고 있는, 가장 먼저 보고 싶었던 그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발견했는지 어둠과 달빛의 중간 경계에서 벗어나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보고 싶었어 긴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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