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여름축제 합작 : http://hyanghong.wixsite.com/summerfastival

 

 

 

 

길 가던 누군가가 일사병으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았고 길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의 더위였다. 틀어도 되려나― 고민하다가 에어컨을 틀고 카구라와 같이 축 늘어져 시원한 바람에 의식을 함께 날리고 있을 때 문이 벌컥- 하고 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친 발걸음과 같이 들고 온 듯한 무언가를 방 어딘가에 내팽개치는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내 누워있는 내 머리 위로 종이 한 장이 나타났다. 종이를 받아들고 누가 건넨 건가- 확인을 하니 방긋 웃어 보이는 타카라가 있었다.

 

"긴토키!! 우리 축제 보러 가자!!"

 

잔뜩 들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어 천천히 종이로 고개를 돌렸다. '가부키쵸 여름 대 축제' 라고 커다란 글씨로 쓰여 있는 포스터였다. 화려하게 터지며 각가지 색을 내고 있는 불꽃놀이를 바탕으로 해서 금붕어 잡기, 사격, 각종먹거리 등 흔히 볼 수 있는 무난한 축제 프로그램들이 작은 글씨들로 적혀있었고 제일 중요한 날짜도 바로 옆에 큼지막한 크기로 적혀있었다.

 

"잠깐 이 날짜면 오늘이잖아?"

"응! 그러니까 오늘 가자. 신파치한테 물어보니까 타에랑도 갈려 했으니까 먼저 가 있는다던데?"

 

이미 가자는 말을 연발해대는 타카라와 가만히 누워 조용히 듣고 있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마치 결정 난 것처럼 이미 들떠있는 카구라였기에 거절하면 벌어질 상황들이 눈앞에 그려져 자포자기하고 "그래 가자. 가자고 오늘 저녁에 축제 보러."라는 말을 결국 내뱉었고 카구라와 타카라는 서로 신 나며 약속시각과 장소를 정한 뒤, 서로 천천히 축제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축제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서 타카라를 기다린다. 어서 들어가자고 말하는 카구라를 신파치와 타에한테 맡기고 구경하고 있으라며 먼저 보낸 뒤, 기둥에 기대어 입구와 이어져 있는 길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평소라면 약속시각을 악착같이 지키던 그녀였지만 이상하게도 약속시각이 이미 한참 지났지만,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길을 잘 잃어버리기에 설마 길을 잃어버린 건가-? 싶어 찾으러 가려는 순간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타카라가 보였다.

 

"미안해- 오다가 길 잃어버리는 바람에 찾아오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

"그래서 우리 출발할 때 같이 출발하고 했잖아."

"준비도 다 못 한 상태였는데 어떻게 출발해."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짜증을 내기에 주름 잡힌 미간을 한번 눌러주고 "어서 가자 늦었다." 그녀의 손을 잡고 축제의 안으로 걸어갔다.

 

처음으로 금붕어 잡기를 시도했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그물이 찢어져 실망하는 타카라의 모습을 보고 실컷 비웃자 "긴토키는 실패하면 가만 안 둘 거야." 라는 말에 웃음기를 멈추고 시도를 해봤지만 마치 벌 받으라는 듯이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금붕어 잡기의 막을 내렸다.

다코야키, 파전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사 먹으면서-대부분은 타카라가 먹고 싶다고 샀다. "혼자 먹는 것보다 같이 먹는 게 좋잖아."라며 내 손에도 똑같은 음식을 쥐어 주었다.― 축제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신파치와 카구라를 찾고 있었다.

 

"그냥 우리 둘이서 놀아도 되지 않냐?"

"그래도 카구라랑 같이 약속한 거니까."

"그래. 어- 저기있……."

 

돌아다닌 끝에 발견했지만 신센구미의 오키타와 카구라가 붙어 싸우는 모습과 고릴라를 상대하고 있는 타에, 그리고 두 무리 사이에 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신파치의 모습을 보고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발길을 돌려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쳤다.

축제의 중심에서 멀어졌는지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나무를 붙잡고 숨을 고르다 눈앞에 벤치가 보여 바로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그 자식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반강제로 온 거나 다름없지만 둘이서 같이 데이트 같은 데이트도 오랜만이었기에 한쪽으론 방해받지 않았으면- 아이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 있긴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언제 사서 온 것인지 딸기주스를 내민 것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받은 딸기주스를 쪽- 빨면서 멍하니 발아래에 있는 것들을 바라보았다. 서로의 부스를 홍보하는 목소리, 왁자지껄 축제에 빠져 잔뜩 즐거워 보이는 목소리가 주황색 불빛들에 어우러져 보였다.

쪽- 액체들이 딸려오는 소리가 멈추고 공기들만이 딸려오는 소리가 들려 컵을 확인하니 주스가 들어있었다는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어때 다 쉬었으면 슬슬 우리 먼저 해결사로 돌아갈까?"

"아니. 조금만 더 이거보다 가고 싶어."

 

'이거'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잘 알지는 못하겠지만 무언가 기분 좋아 보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에 반쯤 일으키던 몸을 되감기 하듯 벤치에 다시 앉아 타카라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실은 이런 축제 와보는 거 처음이야. 요시와라에서 물어보면 이상한 이야기나 하고. 다른 축제들은 시간이 안 맞아서 못 가고. 오늘만큼은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거든."

 

마치 원하는걸 이뤘다는 듯한-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방긋 웃어 보이며 "오기 싫었을 건데 억지로 끌고 와서 미안해. 그래도 같이 놀아줘서 고마워"라며 나에게 건네는 그 말이, 그 미소가 마음 한구석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문득 지금 다시 타카라를 보니 평소에 즐겨 입던 유카타와 비슷해 보이는 디자인이었지만 조금 더 화려하고 축제와 무척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항상 풀어헤치고 다니던 머리카락들은 꽃 모양을 하고 있는 비즈와 보석들로 꾸며진 비녀로 높게 올려 묶어 고정해있었고 근처의 조명들이 더해져서인지 평소 보던 모습과 무척이나 달라 보였다. 모습을 보고 어떤 말을 말하고 싶었지만, 그 단어를 머릿속에서 찾지 못해 멍하니 입만 벌리고 "어-"라는 말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어디 아파?"라며 거리를 좁혀오면서 내 이마에 손을 올리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어지러운 마음을 이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올려놓은 손을 맞잡은 뒤, 타카라를 마주 보자 덩달아 얼굴이 붉게 물들어가는 게 보였다.

 

"저기- 그러니까-"

"아 찾았다!!"

 

익숙한 목소리- 뒤들 돌아보니 어떻게 찾은 것인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뭐하냐 해?"라며 말하는 카구라와 올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신파치가 있었다. 하아- 저 녀석들 결국 찾아냈네―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깊은 한숨을 푹- 쉬었다. 분위기가 좋게 무르익어가는 듯했는데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금방 내려갈게- 가자 긴토키."

 

내밀어오는 손을 어쩔 수 없이 잡은 뒤 벤치에서 일어나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갔다. 가까운듯하면서도 먼 거리. 내려가는 내내 우리 둘 사이에선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다. 조용히 손을 붙잡고 서로의 시선을 피하면서 길을 따라 내려가기만 할 뿐이다. 이런 어색한 분위기로 내려가다 보면 분명 그 녀석들은 위에서 무슨 일 있었냐, 타카라한테 무슨 행동을 했기에 저러냐― 라고 말할 게 분명했기에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꿔놓고 싶었다. 아까 하고 싶었던 말은 깊은 한구석에 밀어 넣어놓고 생각나는 대로 횡설수설하기 시작했다.

 

"저기 그러니까- 축제 와서 나도 재미있었고, 오랜만에 둘이 같이 놀지 않았냐? 우울해하지 말라고. 다음번에 조금 더 재미있어 보이는 축제 열리면 그때도 다 같이 오자."

 

아- 나도 내가 무슨 말을 내뱉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못들은 걸로 해라." 라고 말하고 먼저 내려가려는 순간 타카라가 내 손을 조금 더 꽉- 잡아왔다. 방긋- 하고 웃어오는 미소에 어지러웠던 마음 한구석이 조금씩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마워. 다음번에도 같이 축제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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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수업내용에도 너무 완벽하게 적응해 맨 뒷자리에서 졸기 일쑤였고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라 해봤자 늘 항상 똑같은 녀석들과 지내고 있었다. 책상 위에 교과서, 그 위에 둘둘 말은 체육복을 올리고 잘 준비를 한 뒤 선생님을 기다렸지만, 수업을 시작하고 10분이 넘게 지나도 선생님은 들어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용하던 아이들도 조금씩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모시러 가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그 영감 교실도 이제 못 찾아오는 거야?"

"무슨 소리야. 그 선생님 몸 안 좋아서 그만두셨잖아."

 

옆자리에 앉아 책을 보던 즈라- 아니 카츠라가 대답해주었다. 아- 그 선생님 그만두셨잖아. 새로운 선생님이라면 뭐- 조금 오래 걸릴 거 같아 체육복위에 고개를 숙여 잠이 들려는 찰나 복도에서 누군가 빠르게 뛰어오는 구두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여자? 누구인 거지? 달리다 급하게 멈추는듯해 보이더니 교실 문이 벌컥 열리고 어깨를 조금 넘는 길이에 하얀색 블라우스에 검은 치마를 입은 여성-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미안- 교실을 잘못 찾아가서 좀 헤맸어."

 

뻘쭘하게 웃으며 걸어오던 선생님은 교탁 위에 가져온 교과서와 출석부를 내려놓은 뒤 칠판에 놓인 분필을 집어 들고 자신의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탁- 탁- 탁- 조용한 교실에 분필 소리만 들려온다. 열린 창문 틈 사이로 살랑거리며 들어오는 바람이 교실 안을 가득 채운다. 바람과 함께 잠은 저 멀리 달아 도망가 버렸고 내 눈에는 칠판 앞에 서 있는 선생님만이 들어오고 있었다.

 

"내 이름은 타카라. 원래 계시던 선생님을 대신해서 이 과목을 맡게 됐어."

 

싱긋 웃어 보이는 미소에 이상하게도 얼굴이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주위에 친구들이 뭐라고 커다랗게 외치는 거 같지만 음소거가 된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긴토키? 왜 그래?"

 

심지어 옆에 앉아있는 저 즈라의 목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걸 지도 모르겠다.

빠져버린 그 순간부터 교무실에 자주 찾아갔다. 얼굴을 자주 비추자 다른 선생님들은 "긴토키 사고 쳤니?"라는 질문을 해왔고 손에 들린 교과서를 보자 "공부하려고?" 마치 여태껏 안 하던 애가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느냐는 듯 한 그런 놀란 말투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찾아가는 선생님은 그런 말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긴토키 오늘은 뭐가 궁금한데?"

"아- 여기 6번 문제요."

 

붉어진 얼굴이 티가 날까 교과서를 빠르게 내밀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고는 문제를 천천히 읽기 시작하는 선생님 이였고 주변에 있는 아무 의자를 끌어다 옆에 앉았다.

너무 좋아서, 계속 보고 싶어서 과목별 부장을 뽑을 때도 제일 먼저 나서서 했고 수업 시작 전에도 먼저 찾아가 항상 물어 보곤 했다. 수업이 들어있지 않은 날은 교과서라던가 반에서 공부하는 친구의 문제집을 빌리면서 모르는 문제 몇 개 고르라고 말한 뒤 빌려 교무실을 찾아가 종종 묻곤 했다. "쟤 왜 저러냐?" "새로 온 선생님 좋아하잖아." 라는 친구들의 말도 듣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놀리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내심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되는 거야. 긴토키 이해했어?"

"아… 네. 감사합니다."

 

"그래. 모르는 거 있으면 다음번에도 찾아와."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선생님이 좋았다. 교무실을 나오고도 한참 동안 쓰다듬어준 머리를 한동안 천천히 다시 쓰다듬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아직도 그곳에 선생님의 온기가 남아있는 듯해 나도 모르게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그 날 오후, 하교준비를 하고 있을 때 선생님이 급하게 나를 찾아왔다. 처리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손이 부족하다며 도와줄 수 있냐고 부탁하시기에 나는 흔쾌히 괜찮다며 선생님 부탁이라면 당연히 들어 드려야 된다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했지만, 같이 약속을 잡은 친구들의 얼굴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 얼굴들을 본 것일까 살았다- 라고 말하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던 선생님의 표정이 한순간에 우울함에 잠긴 표정이 되어버렸다.

 

"미안해 긴토키. 괜한 부탁을 했나?"

"아니에요. 어차피 오늘 약속 없어요."

 

무슨 소리냐며 소리치는 친구들을 한번 째려보고 돌려보낸 뒤 텅 빈 교무실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익숙하게 선생님의 옆자리로 의자를 끌어다 앉아 서류작업들을 도와드리기 시작했다. 손발을 맞추어 하나하나 끝내다 보니 책상 가득 쌓여있었던 서류들은 조금씩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푸른 하늘색이 보이던 하늘은 주황색과 남색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멍하니 교무실 천장을 바라보다 자연스럽게 선생님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옅은 노란빛과 분홍색이 노을에 비춰 더욱 아름다운 색을 띠고 있었다. 선생님의 눈동자가 저렇게 색이 예뻤었나? 평범하게 뛰고 있던 심장이 이상하게도 조금씩 조금씩 빨리 뛰기 시작하고 있었다.

 

"음? 긴토키 왜?"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나와 시선을 마주친 선생님의 눈동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내 입술은 그 어느 말도 내뱉지 못하고 우물우물 꺼리고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 하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선생님, 얼굴에는 열기가 느껴지고 머릿속은 백지가 되어버렸다. 머릿속이 말끔히 비워져 버려서 그런 걸까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는 말 대신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던, 계속 쭉 내뱉고 싶었던 말을 내뱉어버렸다.

 

"선생님. 타카라 선생님 많이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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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갈거냐, 해?"

 

카구라의 목소리가 내 발목을 붙잡는다. 걱정스러운 얼굴, 이미 금방이라도 쏟아 낼 듯한 눈물이 눈에 가득 차 있었다. "누님."이라고 애처롭게 부르는 목소리에 마음 한 구석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안 돼- 이미 결정한걸. 카구라에게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이미 결정한 거니까."라는 대답을 하자 결국 눈물을 보이는 카구라였다.

 

"왜 울고 그래. 내가 말 했지? 지키기 위해서라고."

 

카구라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진정이 될 때 까지 토닥여 주었다. 하지만 쉽사리 카구라는 눈물을 그치지 못했고 한동안 내 품안에서 울기만 하였다. 꽉 잡은 두 손은 마치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훌쩍이던 카구라는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오늘 저녁이야?"라는 질문을 던져왔고 나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겠다, 해. 그럼-"

"카구라-"

 

이름을 마저 다 부르기 전에 이미 카구라는 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맞잡고 있던 짝을 잃어버린 손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공에서 떠돌고 있었다. 아- 이거 뭔가 불안해지는걸. 혼자 떠날려 했지만 일이 조금 커진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달빛만을 의지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늦은 저녁, 망토를 둘러쓰고 어둠의 사이에 의지해 약속장소를 향해 가고 있었다. 손에 들린 지도와 주변 위치를 확인해보니 그 장소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단 걸 알 수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이곳을 떠날 수 있어- 조금 더 걸어갈려는 순간 어느 한 곳에서 사람의 대화소리가 들려온다. 대화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목소리들은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들이었고 늘 항상 예상은 들어맞았다. 긴토키의 옷깃을 잡고 어떻게든 되돌아가려고 애쓰는 카구라와 나를 찾겠다며 "타카라-"라고 내 이름을 불러대는 긴토키, 그리고 막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신파치가 그곳에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그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거야. 들키기 전에 내가 이곳에서 끝내야해- 라는 생각에 손에 들린 우산을 꽉 잡았다. 이건 원치 않은 싸움이야. 하지만 더 이상 들켰다간-

 

"이봐."

 

내가 아직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작은 신호를 던졌다. 목소리를 듣고는 서로의 행동이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한다. 한 번에 끝내야해. 최대한 힘을 실어 우산을 꽉 쥔 뒤, 빠른 속도로 긴토키에게 뛰어들었다. 그렇게 원치 않은 싸움이 시작되었다.

 

 

주변에 뭐가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에서 수전증이라도 있는 듯이 손이 계속해서 떨려온다. 동야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반대편 손으로 떨림을 어떻게든 멈춰보기 위해 있는 힘껏 꽉- 잡았다. 달빛이 비치면서 시야가 어느 정도 확인이 되자 마치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검은 형체가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는 피해야 한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지만 이미 힘이 풀려버린 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카구라가 "긴토키!"라고 외치며 달려나와 검은 형체를 밀어냈고, 나에게 달려오던 그 형체는 저 멀리 나가떨어졌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다가온 카구라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해 보이면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있으라는 말을 덧붙이자 "조심해 긴토키."라는 말을 하고는 저 멀리 달아났다.

 

"어이. 언제까지 쓰러져 있을 거야?"

 

자존심을 건드린 걸까? 움찔- 하더니 이상한 굉음을 내면서 몸을 일으키는 검은 형체. 이제 정체를 알 때가 되지 않았어? 라고 말을 하는 듯이 달빛이 그곳을 비추었고 우산을 지지대 삼아 아슬아슬하게 버티면서 서 있는 희미하게 분홍빛과 연노랑이 섞인 머리카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아- 역시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구나?

 

"타카라. 인제 그만 하는 게 어때?"

"네가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잖아?"

 

"하-" 짧은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비웃음인 걸까 아니면 어이없는 웃음인 걸까- 이런 생각을 길게 이어나갈 겨를도 없이 공격해오는 그녀를 막기에 바빴다. 가볍게 날라오는 몸짓과 다르게 나에게 가해지는 힘은 온몸이 떨려올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다. 동야호로 막아냈지만 힘겹게 버티고 있다는 걸 느꼈는지 히죽- 하고 미소를 짓는 그녀였다. 있는 힘을 최대한 쥐어짜네 밀어내자 가볍게 뛰어오른 뒤,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착지하는 그녀였다.

 

"있잖아- 이렇게 밤중에 싸우는 걸 원치 않거든?"

"나도 마찬가지야. 그만 하는 게 어때?"

"그만하려면 긴토키가 먼저 사과해야 하잖아."

 

아까와 다른 미소라곤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었다. 창백한 것처럼 느껴지는 하얀 피부에 무표정을 짓고 있지만, 눈빛만큼은 알 수 있었다. 증오로 가득 차있는 눈빛 같으면서도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런 눈빛이었다. 마무리를 짓지 않으면 아니 그녀를 말리지 않으면 여기서 내가 끝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손에 들린 우산을 다시 쥐어 잡고 뛰어오려는 듯이 오른쪽 다리를 힘을 주면서 뒤로 쭉-하고 뻗자 작은 먼지 구름이 일어났다.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듯한 무표정에서 이내 금방 끝내기로 다짐한 듯이 표정이 변했다. 손 떨림이 멈춘 줄 알았지만, 그 표정을 보자 하니 다시 손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보통 이런 경우가 자주 있었지만 이렇게 심하게 떨려온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아마-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때문일 거다. 이대로 가다간 공격은 하지 못할뿐더러 최대한 막아내지 못한다면 큰일 날 수 있다는 걸 본능에 따라 직감했다.

 

"어이. 그러다가 나 영영 못 보게 될 수도 있다고? 그래도 괜찮아?"

"그래? 그럼 나야 좋고."

 

싸움을 끝내보려고, 아니면 조금이라도 마음을 돌려보려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전혀 듣지를 않았다. "대화라도 하자고."라고 말을 하면 "애초에 긴토키는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잖아." 라는 비수를 꽂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다. 우산을 휘두르는 힘이나 속도 때문에 방어하기에 정신없이 바빴다. 저 멀리서 도우러 오려는 카구라와, 어떻게든 막고 있는 신파치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 시선을 그쪽으로 돌리자 "신경 쓰다가 긴토키만 다쳐. 내 목표는 긴토키 하나니까 걱정 안 해도 돼."라는 귀를 간지럽히는 그녀의 목소리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선을 다시 그녀를 향해 돌리자 그녀는, 타카라는 싱긋 웃어 보였다. 평소에 나에게 보여주던 그 미소로 하지만 의미가 다른 그 미소로 말이다.

서로 둘 사이의 쉬는 시간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를 세게 밀어내거나, 아니면 발로 차는 식으로의 간접적인 공격을 해 멀리 떨어뜨려 놓지 않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찾아온다 해도 다시 재빠르게 반격을 해오던 그녀였지만 이번은 달랐다. 복부를 세게 걷어차여서인지 상자 무더기에 쓰러지더니 "끄으윽-"이라는 고통스러워하는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나 때문인 건가-? 라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다가 갈려 했지만 그래 왔듯이 우산으로 지탱해 몸을 일으키는 그녀였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다리가 떨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괜찮아?"라고 질문을 던지고 싶었지만, 생각과는 다른 질문이 입안에서 튀어나왔다.

 

"싸움을 그렇게나 싫어했는데 왜 '그곳'으로 들어간 거야?"

"뒤늦게 깨달았으니까. 내가 있어야 할 곳을."

"그럼 이곳은?"

 

던진 질문에 무언가를 고민하는듯했다. 망설이는 걸까? 직접 떠나기로 한 거면 왜 망설이는 거지?

싸울 때도 우산을 휘두른다든가, 자신의 주먹이나 몸을 이용하는 싸움만 할 뿐 손에 들린 저 우산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저걸 사용하면 이런 식으로 싸우는 것보다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다치는 게 싫은 걸까 아니면 싸울 마음이 없는데 어떤 이유 때문에 싸움을 하는 걸까-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곳도 소중해. 그러니까 지키려고 하는 거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아까와는 다르게 슬픔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았다. 저 말만큼은 진심이란 걸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타카라-" 그녀의 이름이 무의식중에 흘러나왔다. 내가 이름을 부르는 걸 들은 것인지 흠칫- 하는듯했지만 이내 고개를 세게 저어 보이며 마치 부정하는듯해 보였다.

 

"미안해."

 

이번만큼은 방어할 틈도 없었다.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그녀는 나를 세게 우산으로 후려쳤고 그대로 날아가 버린 나는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틈도 없이 달려와 날리는 주먹을 맞고 나서 어두운 밤하늘이 빙그르르 도는듯하더니 순간의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병원이었고 엄청난 통증이 느껴지는 머리를 붙잡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울먹이며 나를 바라보는 카구라와 덤덤하게 있는 신파치가 있었다. "긴쨩-!"이라고 부르며 달려드는 카구라를 막을 틈이 없었다. 울먹이는 카구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신파치를 바라보자 마치 어떤 말을 내뱉을 것인지 알고 있다는 듯이 "걱정했어요."라는 말을 했다. 아무리 병실 이곳저곳을 둘러보아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타카라는?"

"누님은 떠났다, 해."

"떠나다니?"

"긴토키가 기절하고 나서 저희한테 와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갔어요.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마지막까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가버린 그녀-너였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나를 찾아온 신센구미 녀석들이 그날 밤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는 지속적인 민원접수, 그곳에서 나를 본 거 같다는 증언들이 들어왔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말해 돌라는 질문에 나는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네가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선택을 했다면, 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너를 지키려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나는 그 싸움의 이유를 알지 못하고, 사라진 너를 아직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너를 찾지 않고 있다. 네가 나타나 이유를 설명해 줄 때까지 왜 그 길을 선택해야만 했는지 나에게 대답을 들려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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